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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회> 수확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22/05/29 [18:56]

묵정밭둑에 구덩이 몇 개 파 호박씨를 묻었다

잇몸 부실한 우리 두 늙은이

호박전을 생각하면서

마디마디 열려라

주위의 풀을 깎고 재를 뿌리고 똥도 몇 바가지

찌티려 주었다

 

한 여름이 다 가도록 잊고 있었는데

조석으로 바람 선선하게 불어 와

생각이 맑아져

호박꽃 따라 풀숲을 헤쳐 보니

여린 잎 뒤에 숨었다가 배시시 웃으며 얼굴 내미는

주먹댕이만한 호박 하나

 

후무지다 애호박

첫 놈 꽃 불알 같은 허벌난 수확

 


 

 

▲ 정성수 시인     © 울산광역매일

호박은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에게 맛있는 식재료를 제공한다. 호박순은 쌈으로, 애호박은 나물로, 늙은 호박은 영양식으로 좋다. 봄에서 가을까지 사람들에게 주는 영양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봄이 되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쓰러져가는 울타리 밑에 심어 놓은 올망졸망한 호박 새싹들이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식물답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특히 울타리에 기대선 때죽나무를 선점한 호박순은 승승장구한다. 다른 녀석들이 땅바닥을 기면서 아옹다옹할 때 호박순은 욱일승천하듯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이 녀석은 순식간에 4~5m 되는 때죽나무 꼭대기에 오르고 나서는 잠시 멈칫한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것을 안 호박 덩쿨은 지금까지 수직 성장과는 달리 때죽나무 가지를 타고 수평 성장을 한다. 한여름이 되면 때죽나무는 푸르고 넓은 호박잎들로 가득하다. 문제는 커지는 호박들이 때죽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다는 것이다. 위태롭게 보이는 호박들은 바람이 불면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때죽나무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이 슬슬 피해 다닐 정도다. 순간 호박이 툭 하고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입안의 침이 마른다. 누구나 인생의 정점을 지나면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호박 덩쿨이 한 여름철 쭉쭉 뻗어나갈 때는 지구를 다 덮을 것 같지만 어느 정도 뻗어나가면 다시는 성장을 멈춘다. 그때부터 주렁주렁 매달린 호박들에 온 몸뚱이를 바치면서 줄기는 말라간다. 영원한 자연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겸손과 겸허를 알아야 한다. 쭉쭉 뻗어나가다가 시들어가는 호박 덩쿨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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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5/29 [18:56]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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