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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미주 문인협회> 앤틸롭처럼
 
이초혜 시인   기사입력  2024/03/18 [17:10]

▲ 이초혜 시인  © 울산광역매일

 산양(Antelope)들이 떼를 지어 서식했던 도시라서 고장의 이름을 앤틸롭 밸리(골짜기)라고 했다던가. 1876년에 북미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시속 80마일로 달리는 산양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백 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은 이름만 남겨놓은 채 산양들은 흔적조차 없고 한적한 산길을 자동차들만 쏜살같이 달려갈 뿐이다. 먼동이 틀 때 집을 나와서 앤틸롭 밸리를 향해 평균 시속 70마일로 달려가고 있는 나--, 대체 그 무엇이 나로하여금 지난날의 앤틸롭처럼 달리기 선수가 되게 하는지!

 

 모두들 곤히 잠든 토요일 새벽녘이면 나는 어느 날보다 더 일짝 일어나서 먼 여행이라도 떠나듯이 가슴을 설렌다. 행여나 식구들을 깨울세라 조심스레 집을 나선다. 밖에는 어둠이 머뭇거리고 앞뜰에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는 새벽별의 졸리운 모양도 비친다. 나는 앞뒤 차창에 덮인 서리를 대강 털어버리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그리고 잠시 나의 하루를 주님께 맡겨드린 후 출발한다. 바닷가 특유의 뿌연 안개를 가르며 나는 앤틸롭 밸리로 향한다.

 

 앤틸롭 밸리는 L.A에서 70마일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사는 토랜스에서 약 80마일 거리니 차의 빠른 속력으로도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405번 프리웨이 북쪽을 향해 가다가 5번 프리웨이와 합친다. 곧장 가는 길은 새크라멘트로 가는 길이고, 내 목적지로 가는 길은 5번으로 갈려나가 산으로 올라가는 14번 프리웨이다.

 

 그 길은 헤어볼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산봉우리들의 허리를 돌고 돌아서 가는 조용하고 쾌적한 길이다. 비록 산들은 푸른 나무 한 그루도, 누워 있는 바위 한 덩이도 없지만 그 꾸밈새 없이 소박한 시골 아낙 같은 모습에서 오히려 난 편안함을 맛본다. 더구나 아침의 맑은 햇살에 비껴 흑백으로 곱게 조화를 이루는 광경은 나에게 경탄과 더불어 그 빛과 그늘의 근원을 생각나게 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긍정과 수용의 지세로써 결국은 감사할 것밖에는 없다는 뜨거운 감동에 젖어들게도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들의 엎드려 있은 낮은 모습과 그 위로 가슴이 충만하도록 쏟아져 안겨 오는 드넓은 하늘, 그 속엔 신비스런 성곽의 위용을 뭉게뭉게 쌓아가던 은빛의 구름 떼... 또 어느 날엔 세찬 바람이 산골짜기를 휘돌며 무섭게 울부짖으며 자동차를 삼킬 듯이 마구 흔들어대곤 했었다. 이제 머잖아 겨울이 오면 이 산길 가득 눈꽃송이도 춤을 추며 내려앉으리.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같은 눈보라 속을 뚫고 가보겠네!! 안타까운 이별의 안간힘으로 얼어붙은 유리창을 주먹으로 쳐부수던 지바고의 흥건히 눈물어린 눈동자는 두고두고 가슴속에 살아 있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이에 차는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팜데일 호수를 끼고 평지로 내려와 달려 어느새 K 길에 다다른다. 그러면 나는 이제 곧 만나게 될 사랑스런 어린이들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리며 즐거운 미소를 어김없이 날린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를 그리면서 고무신 코 모양을 앙증스레 꼼꼼하게 만들어내던 진이, 미처 존대말을 몰라서 반말로 교장인 나에게 얘기하는 말하는 붙임성 많던 민이, 집으로부터 한 시간을 넘게 직접 운전하고 오는 고등학생과 삼 남매 등, 주말이면 한국어교육을 위해서 쉬지도 못하며 온 정성과 열성을 다해 뒷바라지하시는 학부모님들..... 우리 모두의 가슴속 꿈과 소망이 활짝 꽃을 피워 알차게 열매 맺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기도하면서 산양처럼 차를 몰고 달려간다.

 


 

 

이초혜(채초혜)

 

1940년 출생, 경기여고와 이화여대국어국문학과 졸업(1963년)

동아일보 기자, 1979년 미국으로 이주, 남가주한국학원사우스베이 교장역임.

미 국방외국어대학 한국어교수 역임,  현재 남가주오렌지카운티 거주

1996년 문학세계 시 등단,  1997년 [시조문학] 천료 

저서- <창 밖엔 치자꽃이>-문집(1999년)

       <시간의 바람결>-한영시와 시조집(2010년)

       <그리움 뿌리에 보듬고>(시산맥사)

수상- 제2회 해외동포창작문학상 수상(국제PEN한국본부 수여)-2005년

       Shakespeare Trophy of Excellence(Famous Poet Society_2004년

미주PEN문학상-20011년, 한미문학상, 한국타운공공도서관후원회 이사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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