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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역사 문화탐방> 중구 약사 제방 이야기
 
이수홍 울산문화재 연구원 연구실장   기사입력  2024/03/18 [16:36]

▲ 이수홍 울산문화재 연구원 연구실장  © 울산광역매일

 각자의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정말 중요하고 가치가 출중한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례를 종종 만나게 될 것이다. 울산에서 문화재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에게 사적 제528호 약사제방은 단연코 그중 으뜸이다.

 

 ‘제방’이란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거나 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흙이나 돌 등으로 막아 쌓은 구조물인데, 우리나라는 삼한시대에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에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김제 벽골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제방인데 흘해왕 20년(329년), 21년에 축조된 것으로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방으로 알려져 있다. 김제시는 벽골제의 중요성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벽골제 인근에서 지평선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제방은 발굴조사 자체가 희소하다. 조사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제방 자체가 화려한 무덤방이나 집자리처럼 뚜렷하게 전모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출토되는 유물이 적고, 대부분 파편에 불과해 유물 자체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다만, 그곳에 제방이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울산 중구 약사제방은 삼국시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600년 전에 축조되어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울산 혁신도시 개발부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 때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는데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이 발견된 상황도 어쩌면 극적(?)이다. 당시 약사 제방은 산자락의 마지막 줄기 양쪽을 메워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제방 자체가 산 자락의 일부처럼 변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제방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지도에도 자연 지형으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아무도 이것이 인공적인 구조물인지 몰랐다. 발굴조사는 유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굴조사와 확인된 유적의 대상물과 유물을 직접 조사하는 정밀 발굴조사로 나눌 수 있는데, 시굴조사 때만 해도 이곳이 제방인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당시 시굴조사 때 산자락(실제로는 제방) 위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확인되어 정밀 발굴조사로 전환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적이 형성된 문화층이 자연 퇴적층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사람이 쌓았다는 것을 발견하여 제방 조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만일 통일신라시대에 약사제방이 폐기되어 시간이 흐른 후 그 위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기들의 살았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이 중요한 유적은 혁신도시가 개발될 때 아무도 모르게 깡그리 사라졌을 수도 있다. 시굴조사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이고, 이후 정밀발굴조사를 담당한 기관과 조사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웃 일본에도 약사 제방이 축조된 시기와 비슷한 때 축조된 제방이 있었다. 오사카에 있는 사야마이케(狹山池) 저수지인데 지금도 저수지로 이용되고 있다. 저수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616년경에 축조된 일본 최고의 댐식 저수지인 것이 밝혀졌다. 일본이 이 제방 유적을 어떻게 보존·관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유적의 중요성에 걸맞게 바로 사야마이케 박물관을 건립하였는데, 그 거대한 제방의 단면을 너비 3m, 높이 1.5m, 두께 0.5m 크기로 각각 101개 조각으로 잘라내어 옮겨 박물관에서 다시 붙여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설계를 맡아 건축물 자체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고학과 건축학이 만나 큰 시저지 효과를 낸 것이다. 이 박물관은 제방박물관답게 물이 모티브가 되었으며 안도 타다오의 건축 양식이 유적의 성격에 맞게 표현되어 건물 자체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도 많다고 한다. 

 

 우리 약사제방 전시관은 중구 약사동 종가14길 22-28에 위치하는데 주도로인 북부순환도로에서 보이지 않는다. 혁신도시 안쪽으로 들어가 약사제방전시관 주차장에서 들어서야 제방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잠시 아래로 산책 겸 걸어내려 가면 전시실 입구가 나온다. 원래 약사제방이 있던 곳에 전시실이 만들어져 바로 제방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성격의 사야마이케 박물관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왜소하게 느껴져 필자는 늘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짠한 애틋함을 느낀다. 도심에 있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고, 위치가 중요한 제방유적을 그 자리에 보존했는데도 그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찾아가 보고 싶어질 만한 것을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안도 타다오에 필적할 만한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박물관 설계를 맡겨 다시 건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늘 박물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쉬는 곳, 어린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약사제방 전시관을 울산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해야 한다. 제방은 출토된 유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유물이나 발굴때의 사진만으로는 흥미를 끄는 데 무리가 있다.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유적의 중요성을 알면 새롭게 보인다’ 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몰라도 봤을 때 흥미를 끌어야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는가. 이런 유적은 디오라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할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선 해마다 전시장 하나씩이라도 시민이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바꾸었으면 좋겠다. 유물이 많지 않더라도 모형을 제작해 재밌게 전시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비슷한 사례의 국내외 박물관을 정기적으로 견학하고 좋은 점은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약사제방 전시관이 그 규모와 외관에서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약사제방이 가지는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초라한 것이 절대 아니다. 이 제방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우리 선조들이 지형을 활용해 물을 얼마나 잘 이용했는지를 알려주는 현장 그 자체이다. 이제는 우리가 약사제방전시관을 잘 활용하고 약사제방을 널리 홍보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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