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ㆆ` 소리의 특징에 대해 `深(심)`으로 설명하였다. 해례본이 발견된 이래 대다수 국어학자들은 그 `深`자에 대해 `깊다`로, 반대어인 `淺(천)`에 대해서는 `얕다`로 단순 번역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순치 않다. 그렇다면 해례본 내 `深`과 `淺`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훈민정음해례 편 4~5장에서는 중성 `ㆍ, ㅡ, ㅣ`에 대해 `深`과 `淺`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ㆍ舌縮而聲深.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ㅣ舌不縮而聲淺." 생략된 부분을 넣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ㆍ`는 혀가 뒤로 오그라져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다.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지도 약하지도 않다(중간).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깊을 심)`자는 `깊다`가 나타내는 여러 의미 중 `정도가 심하다`를, `淺(얕을 천)`자는 `정도가 약하다`를 뜻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라 함은 혀가 입안 뒤쪽으로 오그라드는 `혀의 수축 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례본의 이와 같은 설명은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전설모음, 중설모음, 후설모음의 이론과 일치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설모음(前舌母音)은 입천장의 중간점을 기준으로 앞부분, 곧 전설면과 경구개 사이에서 조음되는 모음으로 `ㅣ(이)`가 대표적이다. 중설모음은 혀가 전설모음과 후설모음 중간에 위치하며, `ㅡ(으)`가 대표적이다. 후설모음은 혀의 정점이 입 안 뒷부분에서 발음되는 모음으로 `ㆍ, ㅗ, ㅜ` 등이 그에 해당한다.
혀가 입안 뒤쪽으로 오그라진 상태에서의 모음은 입안 뒷부분에서 소리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후설모음` 또는 `후설중성`이다. 따라서 `ㅇ` 보다 더 빠른 소리인 초성 `ㆆ`은 혀의 수축되는 정도가 심한 `후설모음`에 사용되는 목구멍소리다. 그에 비해 `ㅇ`은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거나 중간쯤인 `전설 및 중설모음`에 사용되는 목구멍소리로, 둘은 구별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모음`과 `중성`의 차이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제음성기호에서 [i]는 바로 앞에 자음 없이 단독으로 쓰일 땐 `이`에 해당하는 `모음`이지, 중성 `ㅣ`가 아니다. [ki]처럼 앞에 자음이 붙을 때만 훈민정음 중성 `ㅣ`같이 작용한다. 홀로는 `ㅇ` 더하기 `ㅣ`의 완전한 음이다. 2019년 6월 4일자 `훈민정음에서 음(音)은 성(聲)과 다르다` 편에서 밝힌 것처럼, 중성 `ㅣ`는 음소일 뿐, 그것만으론 결코 음이 될 수 없다. `ㅣ`를 편의상 `ㅇ`을 붙여 `이`로 읽게 하는 지금의 학교교육이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진실은 이렇다. 국제음성학회는 `ㅎ[h]`과 같은 계통의 목구멍소리 `ㅇ`과 `ㆆ`에 해당하는 자음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사진>에서처럼 `ㅇ`과 `ㅡ`의 합침인 `으`에 해당하는 중설모음 [ɨ]자와, `ㆆ`과 `ㅡ`의 합자에 해당하는 후설모음 [ɯ]자는 만들어냈다. 이는 훈민정음과 경쟁 및 보완 관계에 있는 국제음성기호를 이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고로 `音(소리 음)`은 [ɯm]으로, `淫(음란할 음)`은[ɨm]으로 표기해야 한다.
`淫(음)`의 `으`는 혀가 조금 수축되는 중설모음이고, `音(음)`의 `으`는 혀가 뒤쪽으로 더 수축되면서 목구멍이 좁아지며 빠르게 발음되는 후설모음이다. 비록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국제음성기호를 보고 세계 많은 이들이 구별하고 있고, 또 세종대왕도 구별하였듯 우리도 `ㅇ`과 `ㆆ`을 구별해서 써야 한다. <사진>에 나오는 국제음성기호 후설모음들의 초성은 모두 훈민정음으론 `ㆆ`이다. 그런데 우린 그 음가가 소실됐다는 교육에 따라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대한국어 `오`와 `우`의 음가는 그에 해당하는 국제음성기호 [o], [u]가 증명하듯 모두 후설모음이니, 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 `ㆆ`은 지금도 우리 말소리에 생생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