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용기는 아니다.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무대 울렁증`처럼 누군가 앞에 선다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청중을 압도하고, 무대를 `웃음바다`로 만들어내는 유명 개그우먼이 한 말처럼, 이 무대의 떨림을 가장 잘 극복할 방법은 숱한 시뮬레이션이다.

그 무대의 퍼포먼스를 완전히 익혔을 때, 긴장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이다. 가깝게는 대학교의 발표과제, 조금 멀게는 직장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등이 학생들이 미래에 마주할 수 있는 중요한 발표 순간일 것이다. 아이들이 중요한 무대에서 좌중을 압도하며 자기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의 마중물이 되는 수업을 해줄 수는 없을까?

수업시간에 꼭 발표를 기본활동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초등학교에서 `저요, 저요!`를 하며 새끼 새들처럼 손을 들던 학생들이 중, 고등학교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눈치만 보기 바쁘다. 그러니 다시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나의 수업시간만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시키기로 목표를 세웠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소그룹(보통 4인) 간에 수다를 빙자한 의견교환 시간을 준다.

정말 교실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질 때도 있지만, 학생들의 목소리를 나누고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다음은 소그룹의 의견소통 결과를 정리하여,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에게 학급을 대상으로 발표할 기회를 준다. 청중이 고작 3명이었다가, 30명으로 훌쩍 늘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청중이 몇 명인 것이 뭐가 중요하겠니. 너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소중한 거다. 3명에게 이야기하듯, 너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니. 다른 친구 모두가 경청해 줄 때의 기분을 경험해보렴`

발표를 유난히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늘 전해주는 말이다. 참 이상하게도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열이면 열, 모두 힘을 내어본다.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일지라도, 큰 용기가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친구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는 듯 나머지 서른 명의 친구들은 경청에 힘을 쓴다.

과연 이러한 경험을 계속 반복한 학생에게도 `무대-혹은 발표-울렁증`이 존재할까. 4년 전, 1학년으로 입학하여 나와 만났던 제자가 생각난다. 이름만 불러도 귀부터 붉어지면서 삽시간에 얼굴 전체가 홍당무로 변해버리던 친구였다. 정말 모세혈관에 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보일만큼의 얼굴색 변화는 발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교실 앞에 나서기만 하면 친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니 말이다. 이 학생이 친구들의 앞에서 발표하면서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을 가지게 되는 데까지는 딱 2년이 걸렸다.

현재는 똑 부러지는 말솜씨로 훌륭하게 면접에 합격하여 `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으로 잘 성장하고 있으니 교사로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웬만한 일로는 홍당무가 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니 말이다. 누군가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누군가 앞에서 나의 정보를 나눈다는 것. 혹은 누군가 앞에서 나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 이 발표의 시간이 괴롭지 않은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대의 카타르시스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학생이라면, 가깝게는 대학교의 발표과제, 조금 멀게는 사회에서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등, 미래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미래를 이끄는 리더의 수년 전 모습을 미리 만나고 있는 나의 이 시간에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