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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주우며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7/10/22 [14:44]
▲ 유서희 수필가   

가을이다. 산과 들판 곳곳에 열매 익는 소리가 풍요롭다. 단단하고 맛있는 열매를 위해 가을은 쨍쨍한 황금빛 햇살을 쏟아낸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열매가 저절로 붉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와 바람을 견디며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견디었을 것이다. 함께 있던 열매가 떨어져 나갈 때의 두려움과 불안을 온 몸으로 견디었을 것이다. 영그는 열매 중에서도 밤은 특히 사랑받는 열매다. 추석 연휴에 부모님의 산소에 성묘를 갔다. 오랜만에 동행한 언니와 형부는 산소가는 산길이 새로운 지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산소는 산의 중턱에 있다. 산길은 산책하기 좋을 정도로 얌전하고 조용 했다. 어렸을 때는 웅장하고 커 보였던 바위가지금은 아담하게 작아 보이는 것을 보니 세월이 흐름이 한 순간에 느껴진다.

 

인적드문 곳이라 잎 사이로 흐르는 햇살이 청아하다.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깨끗한 바람이 까슬까슬하게 스며 들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곳곳에 밤송이가 떨어져 흙과 돌멩이 위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보였다. 살짝 열린 밤송이 사이로 보이는 붉은 빛의 유혹은 모기에 헌혈하는 고통도 기꺼이 감수하게 했다. 밤을 줍는 재미는 한순간에 새벽 밤을 줍던 동심으로 빠져들게 했다.  밤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어둠이 눈 뜨는 가을이 오면 의례히 새벽에 눈을 떠야 했다. 밤사이 떨어진 밤을 가장 먼저 줍기 위해서다. 촉촉한 안개가 나뭇잎 사이로 스미어 들 때 두툼한 외투를 입고 소쿠리를 들고 무서움도 모른 채 집 뒷산으로 간다. 새벽잠 맛이 꿀맛이었지만 다른 아이들 보다 제일 먼저 이슬 업고 있는 밤을 줍고 싶었다. 동네를 포옥 감싸 안은 대나무 밭 둘레길 따라 밤을 줍다 보면 건너편에서 다른 아이들이 밤을 주워 모으고 있다.

 

중간쯤에서 만나 주운 밤의 양을 비교해 본다. 누가 더 많이 주웠는지 실랑이가 끝나면 이번에 누구의 밤이 더 큰지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쉬지 않고 말을 하면서도 풋밤 껍질을 벗겨내 허기를 채우기 바쁘다. 아직 덜 익은 풋밤의 촉촉하면서도 풋풋한 향기가 담긴 맛을 오독오독 깨물어 먹는 맛은 밥 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그 때의 추억 때문일까. 지금도 생밤 깨물어 먹는 그 느낌이 좋다.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 중에 밤은 유난히 까다롭다. 수확해서 입안으로 들어가기 까지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바로 먹을 수 있는 다른 열매들과는 달리 밤은 온 몸에 가시를 입혀 자신을 지키려는 안간힘과 그것을 기어어 벗겨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한바탕 사투를 벌여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가시에 찔리며 어렵게 밤을 꺼내면 이번엔 딱딱한 갑옷으로 철통방어를 하고 있다. 입 모양을 비틀어가며 송곳니로 어렵게 껍질을 까면 이번엔 떫고 텁텁한 율피로 장벽을 세우고 있다. 토끼가 되어 앞니로 밤을 돌려가며 율피를 벗기면 입 안 가득 떫은맛으로 밤의 마지막 반격이 기다리고 있다. 입 안의 껍질을 퉤퉤 뱉어가며 어렵게 율피 까지 벗겨 내고서야 속살 뽀오얀 밤을 겨우 맛 볼 수가 있다.  밤은 열매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된 식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특이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여느 식물은 싹을 틔워 낸 최초의 씨앗은 사라져 버리지만 밤은 그 싹이 자라 아르드리 나무가 되어도 최초의 씨앗은 절대로 썩지 않고 생밤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리로 밤은 조상과 후손들의 영원한 연결을 의미하여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밤이기에 겹겹이 보호막을 쳐서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이 특별한 이유다. 어느 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형부와 언니도 어느 새 비닐봉지 가득 밤을 채웠다. 언니의 이마에는 모기에게 물리 흔적이 심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 또한 팔과 손등에 몇 군데나 모기가 다녀간 흔적으로 부어 있었다. 옷에는 밤나무잎이 얹혀 있고 풀어진 옷 매무새를 한 채 모기에 물린 자국을 자랑하는,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은 서로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갓 세수한 어린아이의 얼굴같이 말간 밤들이 비닐 봉지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잎의 노래와 동물의 속삭임, 바람의 재잘거림이 밤 속에 동글동글 익어 있다. 조상과 영원한 연결을 의미하는 밤을 들고 부모님의 산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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