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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11월의 건지산 길
 
강명수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04/08 [17:25]

▲ 강명수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작년 이맘때다. 다시 연화마을 입구에 섰다. 전주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옛길 제17회 길 문화축제에 발길을 놓았다. 박경리선생의 『토지』와 쌍벽을 이루는 『혼불』의 저자 최명희 선생의 묘소에서 잠시 묵념을 하였다. 묘비 글씨가 강암 송성용의 제자이고 추사 이래 최고의 서예가로 꼽는 하석 박원규의 서체라는 말을 듣고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더욱더 빛나는 묘비 같았다.

 

 한길사에서 출간한 『혼불』 8권에서 전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가 있다. 전주를 “천년의 고도”이며 “완전한 누리라는 뜻으로 이 글자 속에는 무궁하면서도 아늑한 이상이 담기어 있다”라고 썼다. 잠시 꽃심의 작가정신을 기리면서 건지산의 속살로 걸어 들어 갔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던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불가한 경치가 펼쳐진다. 옛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란 말이 딱 어울리는 장소, 가을 건지산이여!

 

 전주와의 인연이 여고시절부터였다. 나의 모교인 전북대학교의 교가가 건지산이란 노랫말로 시작한다. 그런데도 학교 뒷산에 관심도 두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가본적 없었다. 이 아름다운 가을 건지산을 모르고 지냈다. 1년전 길 문화축제에 참가했을 때는 충격이었다.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걸었던 기억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연비어약(鳶飛魚躍) 그 자체다. 오색 단풍터널이다. 사방팔방이 단풍, 단풍, 단풍. 폭신한 단풍잎 카펫 위를 거니는 시간의 방랑자 같았다. 도심 속에 이 어찌 그림 같은 단풍정원이 있단말인가.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고 노래한 구르몽의 <낙엽>을 거닐며 나의 영혼을 칭얼거려본다. “절망이 나무 벤치 위에 앉아 있다”고 한 자끄 플로베르의 싯귀가 있지만, 눈처럼 쌓인 빠알간 단풍 잎으로 하트모양을 그려 놓고 사진을 찍는다. 너무 가까이 찍으니 안 이쁘다. 적당한 거리는 늘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우리 일행은 장군바위에 모여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 윤동주의 <자화상> 등의 시낭독을 하면서 단풍 숲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세상의 권력도 부귀영화도 먼발치에 있었다.

 

 해발 200미터의 건지산. 전주를 보호하는 건지산. 마치 숨은 보석을 찾아낸 기쁨을 주는 건지산. 정지상은 <영두견>이라는 시에서 “우는 소리 애끓으니 산대나무 찢어지고 곡하여 흘린 피로 들꽃이 붉더라”라는 구절처럼 붉은 단풍을 뒤로하고 건지산의 단풍터널을 빠져나왔다. 모든 고귀한 장소에는 산책로가 있다. 길이 또 다른 삶으로 변주되는 양자역학의 에너지가 이 곳 건지산에서 함께 하시리라.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2015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법성포 블루스』

천강문학상, 동서문학상, 김삼의당 시·서·화공모대전 대상.

전북시인협회 사무국장, 미당문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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