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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미주문인협회>고국 나들이
 
주숙녀 수필가   기사입력  2024/03/13 [16:53]

▲ 주숙녀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3년간을 벼른 셈이다. 코로나 소동 이전에 한국행 항공권을 구입해 놓고 펜데믹을 견디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항공권 무효라는 경우를 당할까 염려스럽기까지 하던 차라 막무가내로 나서기로 했다.  

 

 고향이란 그런 것 일까, 한국을 생각하면 나는 늘 가슴이 달콤하게 들떠오곤 한다. 드디어 도착한 인천 국제공항의 표정은 지난번 2019년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새롭게 건축된 부분들이 싱싱 우람해서 우선 외모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있다고 치하하고 싶었다. 정겨운 쪽이라기보다 자랑스러움이 앞을 섰다. 나름으로 유럽등지를 두루 섭렵한 바 있지만 굳이 한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은 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인정의 원리가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모든 것들이 통째로 세계의 앞장을 서고 있는 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진보의 혁명이었다. 생생한 감각의 강렬함에 좀 압도당하기도 했다. 한국인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었다. 외모로 보아 여러 조건이 미국과 별 다름이 없었다.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인가 하고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스타벅스 커피샵은 여기저기 많기도 하거니와 그 규모가 대단했다. 무언가 미국과는 달라야 하는데 이건 너무나 똑 같다. 미국 이상의 미국이었다. 미국에 있는 스넥샵이나 커피샵, 베이커리 등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낯설음이 전혀 없었다.

 

 어느 곳이나 다이나믹 한 한국인 개개인의 노력이 돋보였다. 어느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도 감지되는 것은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의 몫을 확실히 알고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짊어져야 할 현대성을 간파하고 실천하는 장인 정신이 투철하게 부각되고 있었다. 개인 능력이 극대화되는 현상이 치열하게 노출되어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시골의 공중화장실이었다. 문이 고장 나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에 “10월 29일까지 수선하겠습니다” 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자기 책임에 대한 정확한 계획까지 피력하는 성실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인간개조까지 완성한 것인가? 가슴이 울컥했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까지 진품으로 개조되었나? 즐거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고개를 들어 길 양편에 요란하게 늘어선 간판들을 훑어보았다. “어머, 여기는 한국인데” 놀라웠다. 한결 같이 영어 간판 일색이었다. 이건 아닌데, 칭찬 상승선을 타고 파란 하늘에 훨훨 날아오르던 감탄의 연이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여기는 분명 한국인데 웬일이냐는 생각 때문에 가슴 한쪽이 조각나고 있는 것 같이 찌릿하게 쑤셨다. 맥도날드에 들렸다. ‘오더하는 곳’ ‘피컵하는 곳’ 옹색스럽게 영어발음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좋은 우리말을 어디 두었느냐고, 무척 비위가 거슬렸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데. 적어도 있는 내 것은 지키고 모자란 것, 없는 것을 받아드려야지 안타까웠다. 극찬하고 싶었던 마음이 스르륵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남발 부산 직행버스가 있는지 미리 살펴야 다음 여행 계획을 짤 수가 있었다. 송정리에 내려서 소박한 차림의 세쌍둥이 같은 젊은 안내원들에게 물었다. 분명히 버스는 운영되고 있는데 정해진 좌석수가 차면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까 빨리 승차권을 사야한단다. 전화로 예매도 불가하고 오직 사람이 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송정리에서 해남까지는 여러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왜 예매가 안 되는 것일까? 피로감이 밀물처럼 달려들었다.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기분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분들 셋은 나더러 어서 가서 표를 사야 한다고 친절을 다하여 재촉하였다. 세 젊은 안내원들은 영어 일어 중국어를 다 구사한단다. 감탄스러웠다. 내 기분은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며 고국의 현주소를 관찰하느라 분주했다. 송정리에서 해남까지는 서너시간이 걸리는데 표를 사기 위해 줄 창 달려서 매표소로 직행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묵중한 기계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 사적 질문이 불가했다. 미국에서 쓰고 있는 크레디트 카드 중 어떤 것은 통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친척분의 카드를 이용하고 현금을 드렸다. 역시 기계는 온기 없이 냉정한 일꾼이었을 뿐이다. 열네시간이나 하늘을 날아서 고향을 찾아온 손들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었다. 오느라 힘들었겠다고 무얼 도와 드렸으면 좋겠냐고 친절하게 물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테이불 여덟 개를 놓고 장사하는 작은 김밥 집에서도 구두주문은 불가했다. 기계주문을 하느라 버벅거리는 미국손님이 딱했던지 주인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다. 속수무책으로 엉뚱한 기계의 냉대에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발전도상의 현상일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도한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오히려 불편하고 원망스러워졌다. 첨단적 생활상이 그렇게 멋진 것만은 결코 아니며 좀 정떨어졌다함이 옳은 표현일 거였다. 구수하게 익은 고구마에서 모락거리는 다스한 김이 대책 없이 식어가며 맛을 잃어가는 순간처럼 안타깝던 기분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인들은 변화되어가는 신세계에 부지런히 적응해가면서 세계최고의 나라를 지어 가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환호하고 동경해야 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내 목덜미를 잡고 늘어졌다. 이렇게 기계에게 모든 일자리를 내어주고 나면 사람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편리한 기기는 영원히 우리의 인간적 친구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가 금방 튀어 나왔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하늘을 떠도는 하얀 가을 구름에게 내가 그리던 고향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부산행 버스표를 뜨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던져주고 나서 직사각형 입체의 묵중한 기계는 자기일이 끝났다는 듯 다시 묵묵히 서 있었다. 그 방을 나오는데 인사할 상대가 없어서 미국에서 간 나그네의 가슴은 몹시 허전했고 서운했고 조금은 슬펐다. 

 


 

 

주숙녀(한국명 정숙녀)

*경희 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중학교 교사 10년 역임 

*수필 (문예운동 )등단

*시 (미주해외문학) 등단

*아동문학 (미주문학) 등단

*수기당선 (미주한국일보)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경희해외문학상 (수필)

*저서 수필집 2권 <추억을 주우러 간 시계> <지나간 시간이 남긴 사연> 

       시집 <그는 어디에>

       평론집<이병주를 읽다>공저

*시카고 미주한국일보에 월 1회 수필등재 (13년간)

*미주한국일보 토요에세이 필진 (3년간)

*시카고 예지문학회 회장 역임. 현제 이사

*미주문인협회 이사 

*세계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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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sookn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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