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컬렉팅에 비해 조셉 H. 허쉬혼의 컬렉션 자체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62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에서 자신의 컬렉션 444점을 전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전시가 공개되자, 미국 미술계는 물론 유럽과 중동까지 들끓었다.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도 허쉬혼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짓자고 제안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 영국은 여왕이 허쉬 혼을 초대해 런던 중심부인 리젠트 정원에 미술관을 여는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세계 미술계를 넘어 영국 왕실까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자 미국 미술계도 나섰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곳 중 하나는 바로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재단이다. 재단은 영국 런던 테이트에 버금가는 미국 현대미술관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사무총장이던 S. 딜런 리플리는 허쉬 혼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한편 백악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만큼 급했던 이유는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가 ‘허쉬혼 미술관’을 짓는데 1,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짓지 않으면 1,000만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었다.
리플리의 SOS에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영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은 직접 허쉬 혼의 그리니치 맨션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대통령 부인까지 재단의 미술관 건립 지원사격에 나섰던 셈이다. 심지어 그날은 린든 베인스 존슨 대통령이 선거권 법에 서명한 날(1965년 8월6일)이었다.
‘1965 선거권법’은 투표권 행사에 있어서 횡행했던 구조적 인종차별을 막은 법안으로, 미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법안이다. 레이디 존슨도 남편을 도와 수십 차례 연설에 나서는 등 헌신했음에도 그 역사적 현장을 뒤로하고 국립미술관 설립을 위해 그리니치로 달려간 것이다. 초 글로벌 미술관을 짓는데 재계, 정계, 미술계가 똘똘 뭉친 셈이다. 이후 존슨 대통령은 허쉬 혼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고, 내셔널몰의 미술관 부지를 직접 보여줬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컬렉션이 미국 국가의 유물로 남게 될 기회라고 생각한 허쉬혼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와, 나와 같은 이민자로 이곳에 도착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나라가 해준 일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내 미술 컬렉션을 미국 국민들에게 제공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미국에서 성취한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라면서 말이다.
1966년 미국 의회는 ‘허쉬혼 미술관과 조각 정원’의 설립을 승인했다. 승인한 예산액은 자그마치 1,500만 달러, 착공식은 이로부터 3년 뒤인 1969년, 공식 오픈은 약 5년 뒤인 1974년 10월 4일이었다.
허쉬혼은 처음엔 회화·조각품 6,600점과 기부금 200만 달러를 쾌척했다(1981년 사망 후엔 작품 6,000점과 기부금 500만 달러를 추가했다).
초대 관장은 허쉬혼 컬렉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아브람 러너가 맡았다. 그리니치 맨션에서 미술관으로 작업을 옮기는 것이 초대 관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우선 맨션에 설치된 조각품 중 4분의 1을 이전했고, 이후 추가로 100여 점을 더 이전해 총 2, 650점의 조각이 워싱턴으로 넘어왔다. 작품 수만 보아도 조각 정원이 중요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