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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미 캘리포니아 > 은사 김송태 선생님을 기리며
 
박휘원 수필가 미주문인협회 동인   기사입력  2026/05/06 [16:27]

▲ 박휘원 수필가 미주문인협회 동인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은혜로운 스승’인 은사를 일생에 단 한분이라도 만난 사람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은사를 가진 삶이란, 망망대해에서 노저어 갈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판을 가진 항해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다. 비록 내 삶은 평범했고 내 몫의 죽음의 골짜기도 헤매봤지만, 어린 나이에 나는 ‘은사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울산중학교 2학년 때 어느 가을날, 첫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국어 담당이자 담임이었던 김송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운동장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반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슨 사고라도 저지른 것인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춤주춤 운동장으로 나가자 벌써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연단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나 혼자가 아니구나’싶어 좀 안심이 되었다. 

 

조금 후에 교무실 쪽에서 김송태 선생님이 걸어오셨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군 같은 우람한 체구였지만, 단정하고 짧게 깎은 머리와 약간 통통한 동안의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오늘이 한글날인 것은 다들 알고 있지? 울산 군 주최 한글날 백일장이 열리는데, 너희들이 뽑혀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일장으로 우리를 인솔해 갔다. 백일장 장소에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와서 북적였다. 얼마 있지 않아 어떤 분이 단위에 올라가서 한글날의 취지를 발표했다. 백일장에서 쓸 글의 제목은 ‘한길’이며 각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나 산문의 형식을 선택해서 쓰라고 했다. 필기도구를 분배받은 학생들은 제각기 여기저기 흩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큰 나무 아래 앉아 주어진 제목 ‘한길’을 생각해 보았다. 매일 우리 동네 아이들 대여섯 명과 함께, 아침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을 타박타박 걷는, 집에서 학교까지의 20리 (8 km) 길을 떠올렸다. 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린 길, 육이오 전쟁 동안에는 미군 트럭과 지프차들이 쉴 새 없이 먼지를 구름같이 일으키며 달렸지만, 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울산 읍과 장생포 항구 사이를 승합차들이 간간이 다닐 뿐이었다. 

 

가파른 대현 고개의 한길에서 왕생이 들판을 내려다보면, 봄에는 자운영꽃이 논바닥에 진분홍 바다를 이루고, 가을이면 익어가는 벼가 금빛으로 물결쳤다. 들판 가운데로 구불구불 난 한길 가에는 코스모스가 태화강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흔들리곤 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워진 한길의 풍경들을, 내 마음에 떠오르는 그대로 썼다.  

 

백일장 끝날 시간이 되자 어른 직원이 학생들의 글을 걷어가고, 우리는 학교로 돌아와 각자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하교할 무렵이 돼 선생님이 우리 반으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백일장에 내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는데, 참 예상 밖의 일이 생겼다. 심사 결과가 나오자 우선 삼등에 우리 학교 학생이 되었나 보았으나 타교였다. 이등을 열어보았으나 역시 타교였다. 실망이 되었지. 일등을 열어보려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더군. 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열었는데, 놀랍게도 우리 학교 학생이 일등이었다” 

 

선생님이 이름을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됐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일어서라고 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달아오른 얼굴로 일어섰다. 선생님은 상장과 책과 노트 몇 권의 상품을 전해주었고,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날의 일은, 처음으로 내 안에 있던 자신에 대한 인식을 싹트게 했다. 그때까지 나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언니 오빠들 틈에서 자란 늦둥이 막내, 잘 넘어지는 울보,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주위 사람들이 재단해 준 나에 대한 견적을 나는 순순히 받아들였던 셈이다. 그러나 김송태 선생님은 내가 나를 다시 살펴보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내가 누군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졸업식 날 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딱 한마디 “졸업 후에도 제발 가끔 찾아와 주기 부탁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꼭 그렇게 하리라고, 방학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뵈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마음에 품은 씨앗이었을 뿐, 반세기가 넘도록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마침내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는 그 우람했던 기골은 여전했지만,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동안이었던 얼굴에는 세월의 자국이 완연했다. 

 

선생님은 졸업식 때의 그 부탁을 기억하고 계실까 궁금했지만 죄송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선생님이 내게 주신 삶의 나침판을, 살면서 한순간도 시야에서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 말도 역시 꺼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나는 선생님의 부탁을 되새긴다. 그리고 올해는 꼭 한국에 가서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제자로 선생님을 뵈어야지 하고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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