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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어떤 사물이나 단어의 손을 잡으면
 
유안나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04/21 [16:45]

▲ 유안나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어떤 단어나 사물은 나와 관련이 지어지면 단순한 사물이나 단어가 아니다. 방에 무심코 놓인 사물이 나를 위로해 주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단어는 혀끝에서 맴돌기도 전에 어떻게 생각의 눈치를 알아챘는지 신발을 신고 댓돌을 내려온다. 아니면 가슴을 열고 성큼 들어온다. 그중에 ‘어머니’는 가장 많은 힘을 가진 단어다. 그 깊이와 그 크기와 넓이는 헤아릴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 아침 외출하다 바지 허리에 있던 단추가 떨어진 걸 알고 당황했다. 비슷한 단추를 찾아서 새로 달고 나가자니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옷핀이 생각났다. 옷핀을 찾아 단추 대신 허리를 여미고 나갔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직도 옷핀은 단단히 여며져 있다. 하루 종일 옷핀의 덕을 본 것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았던 서랍 속 옷핀이 생각났다. 서랍에 있는 다른 물건과 함께 몇 개의 큼직한 옷핀을 발견했었다. 그때는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용돈을 드리면 너희도 사느라 힘든데 무슨 용돈이냐고 몇 번을 사양하시다 결국은 받으셨다. 그리고 뒤로 돌아 치마를 올리고, 그 돈을 속바지에 달린 주머니에 넣으시고 옷핀까지 고정하고서야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셨다. 드린 용돈을 두기에 가장 마땅한 장소가 어머니의 속바지 주머니였고, 속바지 주머니는 어머니의 지갑이었으며 옷핀은 지갑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던 것이다. 내가 돌아온 후에 그것을 열어 세어보시며 조금은 흐뭇해하셨을까? 생각보다 적어 서운해하셨을까?  

 

 한나절을 옷핀 생각과 어머니의 생각으로 보냈다. 그때는 내 형편도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어머니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핑계였을 것이다. 한 번도 어머니가 놀라실 만큼 용돈을 두둑이 드린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온다. 우리는 왜 지난 후에야 후회하고 뉘우치게 되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인 줄 알지만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어머니가 깜짝 놀랄 만큼 두둑이 용돈을 드리고 싶다. 그러면 어머니는 주머니의 옷핀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시며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고 든든해하실까. 이제 생각하니 그 작은 옷핀의 손이 어머니의 지갑을 지켜주었다는 걸 깨닫고 옷핀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진다. 이제 옷핀은 단순한 옷핀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면 손을 내미는 어떤 의미를 주는 사물이 되었다. 

 

 평안하냐? 이 단어는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신 첫마디였다. 평안하지 못하였음을 꽤 뚫어보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평안하기 참 어렵다. ‘평안’이라는 이 단어를 접하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차분해진다. 평안하냐고 묻는 예수의 한마디 질문에는 이제 평안해질 것이라는 암시도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복잡할 때면 이 단어를 좋아한다. ‘평안’이라는 단어에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목련’을 생각하면 옥양목 치마가 생각나고 소복 입은 청상과부가 생각나고 항상 바삐 걷던 흰 고무신이 생각난다. 지금도 달빛 아래 피어있는 목련을 보면 청상의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아 닦아주고 싶다.

 

 장날에 어머니는 돈 되는 무언가를 들고 장에 가시면 동네 아재가 “너희 엄마 어떤 아저씨가 업어가더라.”하고 우리를 놀렸다. 동생과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마을 언덕배기로 달려 올라가곤 했다. 언덕에서 칭얼거리는 동생의 손을 잡고 목이 빠지라 기다리면 옥양목 치마 날리며 바삐 걸어오시던 젊고 예쁘던 어머니는 “아재가 또 너희 놀렸구나. 엄마 너희 두고 어디 안 간다. 걱정하지 말거라.” 하시며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커다란 사탕 한 알씩을 쥐어주셨다. 그러나 장날이면 또 마음이 불안해 동생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올라가곤 했다. 자식에게 해준 게 없다고 늘 미안해하시던 흰옷 입은 어머니! 

 

 어떤 사물들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영감을 주고 사색에 빠지게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詩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작고 보잘것없는 옷핀은 내게로 와서 어머니가 생각나게 하고 후회를 몰고 오는 의미의 사물이 되었다.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창과 졸업

2012년 애지로 등단 

2014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 『당신의 루우움』 

시집 :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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