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뜨면 나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집 나섰다
송림사에는 보이지 않고
한티재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제2석굴암 앞에서도 흔적은 없었다
마당 넓은 거조암
앞 줄 뒷 줄 셋째 줄 . . .
한 명 두 명 열 명 . . .
스무 명 스물두 명 삼십 명 . . .
백 명 옆 이백 명 사백 명 . . .
이 잡듯 뒤져도 나는 보이지 않았다
십 원 동전이 오백 개
백 원 동전이 오백 개
쵸코파이가 오백 개
땅콩 알사탕이 오백 개
장미꽃이 오백 송이
앞앞이 공평하게 차고 앉아
조는 듯 웃는 듯 장난치는 듯
마음은 콩밭에 가 있듯
물 흐르듯 흐르고 있었다
삼백 육십 다섯 번째 보현존자
짙은 눈썹 우뚝 솟은 코
혓바닥은 입천정에 붙일 듯 말 듯
섹시한 장미꽃에 마음 뺏긴 듯
고심하는 콧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아, 낯익은 내가
백 번 절하고 암자 바삐 빠져 나올 때
무심한 새 한 마리 건듯 지나가고 있었다
<시작노트>
지금은 고인이 되신 대구의 유명한 문인수 시인께서 거조암 가서 전생의 자신을 닮은 애락존자를 찾았다면서 지나가는 말을 던지기에 나도 나를 찾아 나섰다.
영천의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는 거조암에 갔다. 한 분 두 분 지나면서 유심히 살폈다. 앉은 자세도 얼굴표정도 각각 달랐다. 우습기도 재미있기도 무섭기도 했다.
전생에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들이었다니 웃을 수도 흉볼 수도 없고 경건하게 엄숙하게 합장을 해서 둘러보았다. 십 원 동전이 오백 개, 백 원 동전이 오백 개, 쵸코파이가 오백 개, 땅콩 알사탕이 오백 개, 장미꽃이 오백 송이를 보니 시주하시는 보살님들의 정성에 탐복했다. 몇 줄을 돌다 보니 애락존자가 보였다. 문인수 시인의 말씀이 생각났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닮아 보이기도 했다. 팔 다리가 가늘고 얼굴에 핏기도 없고 살점이 없고 눈 꼬리가 처진 것도 닮아 보였다. 다시 천천히 돌다보니 어린아이같은 짖굿은 표정하며 토라진 표정하며 혓바닥을 내밀고 메롱하는 표정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사 울고 웃고 아프고 병드는 것이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것에 공감 할 때쯤, 보현존자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눈썹 우뚝 솟은 코 혓바닥은 입천정에 붙일 듯 말 듯 섹시한 장미꽃에 마음 뺏긴 듯 고심하는 듯 콧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아 ! 전생의 나를 찾은 듯 반가웠다. 어느 스님께서 주신 법명이 보현행이기도 했지만 이끌리는 데가 있었다. 윤회, 윤회해서 지금 나는 여기 서 있는가.
김도향
군위 출생.
시와소금 등단.
시집『와각을 위하여』,『맨드라미 초상』.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죽순문학회
여성문학회
시산맥회원
군위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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