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자국이 안보 보장안으로 제안한 주요 내용이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향후 크림반도 탈환 시도와 관련해 '전쟁'도 거론했다.

타스, 인테르팍스, AP,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 회견에서 "러시아의 근본적인 관심사가 무시됐다는 점은 명백하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금지 및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반대 등을 골자로 한 안보 보장안을 제안했었고, 미국과 나토는 지난 26일 이에 관한 서면 답변을 건넸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서면 답변 이후로도 '나토 개방 정책'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답변 내용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공개 석상에서 "나토는 '자유로이 선택할 국가의 권리'를 언급한다. 하지만 다른 이의 안보를 대가로 누군가의 안보를 강화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아울러 나토 개방 정책의 타당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나토 개방 정책이 이같은 '안보 불가분의 원칙'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나토의) 개방 정책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어디서 왔나. 어디에 적혀 있나"라며 "아무 곳에도 없다"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미국의) 핵심 과제는 러시아의 진전을 억누르는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크림반도 탈환을 시도할 경우를 상정, '전쟁'도 거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고, 군사 작전을 시작한다고 상상하자. 나토 블록과 전쟁을 해야 할까"라고 자문,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며 "보아하니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를 무력 분쟁으로 끌어들이고, 우리에게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게 오늘날 미국에서 오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를 나토로 끌어들이고, 공격 무기를 배치하고, 돈바스·크림 문제 무력 해결을 부추기는 것"도 거론됐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이런 많은 문제를 깊이,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라며 "이처럼 상황이 부정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려면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관심사를 참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및 그 동맹이 러시아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안보 보전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긴장 해소를 위한 추가 논의에 열려 있다며 세계 정상과 대화를 이어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푸틴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면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도 예고했다.

이날 발언은 지난해 12월23일 연말 기자회견 이후 푸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우크라이나 긴장 상황과 관련해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이다. 그는 앞서 프랑스와의 정상 통화에서도 불만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날 푸틴 대통령 발언이 공개된 이후로도 러시아와 계속 대화를 이어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외교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라면서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날 미·러 외무장관 통화에서 외교적 길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긴장 완화가 외교적 진전을 쉽게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