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특별기고> ‘등골 브레이커, 하트 브레이커’
 
약사초 교사 박재우   기사입력  2021/05/10 [17:24]
▲ 약사초 교사 박재우     © 울산광역매일

 진부하지만 '라떼 이야기'부터 꺼내자면,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매 학기 담임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의 직업을 조사했다. 그것도 종이에 적어서 개인적으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현대자동차 다니는 사람 손들어! 내리고 현대중공업 다니는 사람 손들어!"와 같은, 아주 공개적이고 비밀이란 1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방식이었다. 

 

 두 번의 질문에 반 아이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고, 나 역시 스스럼없이 손을 들 수 있었던 '주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손을 들 수 없었던 '비주류'의 아이들이 느끼는 소외감 혹은 서러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었다. 

 

 비주류 아이들은 주류들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가 생각보다 쉽다. 그리고 떠오르고 나면 수면 위에 노출된 물고기처럼 주변으로부터 공격받기가 쉽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 못 가는 사람은 손을 들라"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만약 손을 들었다면 그 순간 주변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 받는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선생님은 대개 따로 불러 이유를 묻겠지만, 같은 반 아이들은 왜 못 가는지에 대한 꼬투리 잡기를 즉각적으로 시작한다. 만약 자연스러운 변명을 둘러대지 못한다면 좋지 못한 소문이나 와전은 덤으로 따라온다. '먹잇감'은 포식자들의 공격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지만 이미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어 스스로 위축되어버린다.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나는 하지 못하면 (어떤 이유에서건) 이와 같은 페널티가 주어진다. 즉,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벌을 감당해야 한다. 

 

 또래 문화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중·고등학생에게는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롱패딩’이다. 최근 2~3년 사이 겨울만 되면 거리에는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일명 '김밥'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넘쳐났다. 너나 할 것 없이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을 입고 하하 호호하는 학생들을 보며 난 웃을 수 없었다. 그 중에는 분명 고가 브랜드의 롱패딩을 입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며, 학교에서 어떤 형태로든 소외감을 느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롱패딩의 쟁취란, 무서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투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명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리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롱패딩이, 그리고 요즘에는 플렉스(Flex)라는 이름의 명품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한다. 개성이 없는 것보다, 가격이 비싼 것보다 제일 큰 문제는 그들이 '주류'가 된다는 사실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구분되는 순간, 주류는 비주류를 필연적으로 배제한다. 배제한 뒤에는 억압하는 기제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 억압하는 기제가 심해지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력 및 왕따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현된다. 

 

 어쩌면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부가적인 요소일 수 있는 외투에서조차 서로를 구분 짓고 소외시키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하물며 필수적인 요소인 교육이나 급식, 교복이나 교과서 등에 차이가 생긴다면 문제는 얼마나 심각해질까. 그래서 울산시교육청을 포함해 전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육복지 확대 정책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울산은 2020학년 2학기부터 초, 중, 고 전면 무상교육 시행, 2018학년 2학기부터 초, 중, 고 전면 무상급식 시행 등 다른 시도보다 비교적 빨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는 공사립 유치원도 무상급식 지원대상에 포함했고, 초등 학습준비물이나 초중등 수학여행비, 중고등 신입생 교복비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무상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무분별한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고, 전체적인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염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의 자아 그리고 자존감에 조금이라도 생채기를 덜 남길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달리기의 출발선에서만큼은 씩씩하게 웃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1/05/10 [17:24]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