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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회> 애비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21/05/09 [16:49]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아파트를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으리 물론 

고물이 다 된 자동차마저도 

숟가락 몽둥이 하나라도 주지 않으리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 준 것만 생각하리

여기까지가 애비의 몫이라고

나머지 세상은 모두

네가 짊어지고 가야할 것 들이라고 말해주리

 

내 자식을 울렸다고

개들을 앞세우고 쇠파이프를 들고 설치는 

그런 애비는 되지 않으리 다만 

모질고 강한 모습으로 멀리서 지켜보리

내가 들어갈 목관 하나 놓고 가는

때론 여린 듯 포근하게 핏줄을 어루만지는 

그런 애비가 되리

 


 

 

▲ 정성수 시인     © 울산광역매일

 세상에는 다양한 아버지가 존재한다. 권위적인 아버지. 병든 아버지. 의기소침한 아버지 심지어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가 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마음속에서 공경의 대상이자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자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아버지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부성애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수고를 기꺼이 견뎌낸다. 그래서 존경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대 아버지들은 일상에 쫒기면서 좌절하고 상실감에 젖는다. 자식들과 대화는커녕 가족들의 왕따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을 씹는다. 가부장적 권위는 박물관에 가 있고 힘의 원천이 경제력마자 잃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오정(45세 정년퇴직)’이나 ‘오륙도(56세까지 남으면 월급 도둑)’로 살아갈 자신마저 잃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아버지의 일상은 아들의 신화가 된다” 이영도의 장편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Dragon Raja’의 한 대목이다. 강인한 나무처럼 때론 들풀처럼 살아가는 아버지, 부르면 부를수록 서러운 이름 아버지,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팔 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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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09 [16:49]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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