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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논단> 흔하다는 것의 역설
 
김중규 코트라 수출전문위원   기사입력  2026/05/06 [16:43]

▲ 김중규 울산 코트라 수출 전문위원     ©울산광역매일

내가 어린 시절,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그 나름의 무게와 이야기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친구들의 손에 들린 우산은 대부분 얇고 투명한 비닐 재질이었다. 비가 새는 것을 완벽히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어 운치만은 가득했다. 

 

반면, 방수천으로 만들어진 튼튼하고 검은색 우산은 흔치 않았다. 그것은 곧 귀함의 상징이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우산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특별히 나들이하실 때만 꺼내 드시는 우산이었다. 우산은 늘 가지런히 개켜져 집안의 한쪽 구석,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보관되었다. 마치 귀한 보물처럼 다뤄졌던 그 우산은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가족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우산을 펴고 접을 때마다 들리던 팽팽하고 묵직한 소리는 물건의 견고함과 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예전에는 물건이 고장 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빗속을 걷다 우산 살이 `딱`하고 부러지는 날이면, 몸의 한 부분에 상처를 입는 것 같았다. 부러진 우산은 읍내 장날이 서는 날 우산 고치는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는 닳고 닳은 가죽 공구 가방에서 얇은 철사와 펜치를 꺼내 부러진 살을 이어 붙여주셨다. 그 손길을 거쳐 되살아난 우산은 마치 병을 앓고 난 뒤 더욱 단단해진 몸처럼 튼튼했다.

 

물건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고쳐지고, 또 고쳐져 사용되었다. 우산은 단순히 비를 막아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습관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손에도 눈에도 익어가는 삶의 일부였다.

 

넘치는 풍요 속에 일회용품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산 살이 부러지면, 사람들은 우산 수리공을 찾기보다 근처 편의점으로 향한다. 물자가 너무 흔해서, 물건의 수리 비용과 노력보다 새것을 사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경제적이라고 느끼는 세상이다.

 

이러한 물자의 풍요로움은 약 40년 전, 내가 경험했던 한 장면에서도 극명하게 느껴졌다. 80년대, 미국 해군 선박에서 그들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식탁에는 일회용 스푼, 나이프, 포크가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일회용`이라는 단어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플라스틱 재질이었음에도, 그 단단함과 견고함은 우리가 사용하던 일반 식기 못지않았다. 마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튼튼했다. 식사가 끝난 후, 그들은 이 튼튼한 식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좋은 물건을 한 번 쓰고 버린단 말인가?`

 

너무 아까운 마음에 내가 사용한 포크, 나이프, 스푼을 조심스럽게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와서 사용해 보니, 그 견고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달을 사용해도 마치 새것처럼 흠집 하나 나지 않고 튼튼했다. 그 경험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일회용품이 우리의 영구용품과 비교해도 크게 질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깊이를 바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 당시 미국이 누렸던 것 이상의 풍요 속에 살고 있다. 집집이 창고에는 쓰지 않는 여분의 우산이 쌓여 있고, 튼튼한 일회용 포크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물자가 얼마나 흔한지, 우리는 부족함을 느껴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물론 풍요로운 삶은 편리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물건의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너무 쉽게 버려지고, 견고한 물건이 `일회용`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소비되는 현상은 우리의 자원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킨다. 헌 우산을 버리면서도 아쉬워했던 마음처럼, 우리 안에는 물건의 가치를 존중하고 오래 쓰고 싶어 하는 본성이 남아있다.

 

물자가 흔하다는 것, 그것은 감사해야 할 풍요이자 동시에 경계해야 할 낭비의 그림자이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고쳐 쓸 것`을 고민하는 것을 넘어,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도 물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소비 습관을 고민해야 할 때다. 부족함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에 깃든 가치와 세월을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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