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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논설위원 전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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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는 나라경제가 주기적으로 경기변동을 한다. 경기가 호황을 보였다가 후퇴를 하고, 침체에 빠졌다가는 다시 회복되는 순환을 반복한다. 경기순환 과정에서 물가도 따라서 변동한다. 경기가 호황으로 과열되면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물가가 빠르게 상승한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를 보이면 수요가 줄어들면서 물가도 하락한다. 이때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함으로써 경기를 진정(금리 인상)시키기도 하고 경기를 부양(금리 인하)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화정책의 경기조절기능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라경제가 외부충격으로 인하여 이러한 경기조절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쟁과 석유 파동이다.
경기가 호황일 때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물가가 지속적이고 비례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고, 반대로 경기 침체기에 통화량이 줄어들면서 물가가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물가를 떨어뜨리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는 금리를 낮춰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물가 하락을 제어한다.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침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물가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이른바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상승하여 경제적 고통이 따르게 된다.
역사적으로 1973~1974년에 일어났던 제1차 석유 파동과 1979~1980년에 재발하였던 제2차 석유 파동 때 세계경제는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였다. 제4차 중동전쟁과 이에 따른 OPEC의 수출 금지 조치가 원인이 되었던 제1차 석유 파동 때 국제 유가는 배럴당 3.10달러에서 11.20달러까지 261%나 폭등하였고, 이란 혁명이 원인이 되었던 제2차 석유 파동 때는 국제 유가가 149% 폭등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유가 파동으로 원자재가격이 급등하여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세계경제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져 이로 인한 각국의 경제적 타격이 엄청났다. 이처럼 전쟁 등 외부 충격으로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었던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는 중동사태 이후 70달러를 넘어 95달러 수준까지 급등하였으며, 한때 100달러를 돌파하기도 하였다. 중동사태가 해소되기 전에는 중동 리스크로 인해 앞으로도 5~15% 정도 급등할 가능성이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100~15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다.
유가가 급등함에 따라 국내 물가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체감물가는 이보다 높은 2.3% 상승하였다.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전월 대비 수입물가가 28년만의 최대인 16.1%까지 상승하여 물가 오름세를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지난 4월 10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2.5%로 7회 연속 동결하면서, “중동사태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만큼 당분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금리를 올리자니 둔화되고 있는 경기 상황을 외면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자니 치솟는 유가와 환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형국에 몰린 셈이다. 중동사태가 마무리되지 않는 한 국제유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물가는 상승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ADB(아시아개발은행)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9% 수준에 그치는 반면, 올해 소비자물가는 2.3%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거시적이고 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는 극복하기가 어렵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실업률까지 높아지는 최악의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미시적이고 종합적인 경제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기는 어려운 만큼 기업의 투자에 대한 각종 세금을 감면하여 실질 금리를 낮출 수 있도록 하고, 원자재 등 상품의 공급을 늘림으로써 물가상승 압력을 낮춰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환율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수입물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도록 모든 정책적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