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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규 울산 코트라 수출 전문위원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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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보다 먼저 타오른다. 페르시아만의 좁은 물길 위로 검은 연기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한 척의 유조선이 기울어지며 불길을 토해냈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가리고, 바다는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폭발의 잔향은 화면 너머에서도 느껴질 듯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국제 정치라 불렀고, 누군가는 석유 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화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말들은 모두 너무 작게 들렸다. 그 바다는 오래전부터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 향료와 비단, 보석과 향신료를 실은 배들이 인도양에서 올라와 메소포타미아로 향하던 길목이 있었다. 그 길목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겨우 사십 킬로미터 남짓이지만, 세계의 숨결은 늘 그곳을 통과해 왔다. 북쪽에는 이란의 산맥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고, 남쪽에는 오만과 아랍에미리트의 거친 반도가 서로 마주 서 있다. 그 사이를 지나 서쪽으로 들어가면 페르시아만이 펼쳐지고, 그 먼 끝에는 쿠웨이트의 항구들이 숨어 있다.
페르시아만의 바다는 넓지만, 세계는 그곳에서 한 번 막힌다. 그래서 제국들은 언제나 이 물길을 바라보았다. 향료를 실은 범선도, 석유를 실은 유조선도 결국 같은 길을 지나갔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바다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물길은 늘 좁았고, 욕망은 언제나 넓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설명할 때 종종 성경을 떠올린다. 성경에는 `바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오래된 예언서 속에서 등장하는 그 이름은 한때 거대한 제국의 이름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땅을 `이란`이라 부른다. 예언서의 문장 속에서는 그 이름이 종종 이스라엘을 향한 전쟁의 그림자 속에 등장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금 벌어지는 갈등을 오래된 예언의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역사는 예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바빌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허락했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이름이 어떤 시대에는 구원의 손길이 되었고, 또 어떤 시대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역사는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불타는 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오래전 기억 속으로 되돌아간다.
1989년 여름이었다. H 조선에 근무할 때 선주의 요청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떠 있는 한 유조선을 조사하기 위해 두바이로 향했다. 한국을 떠날 때 이미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두바이 공항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열기를 만났다. 사우나 안에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섭씨 사십 도를 넘어가는 열기가 기도를 타고 내려왔다. 모래 언덕 위로 바람이 지나가자, 모래는 물결처럼 흔들렸다. 낮 동안 태양을 머금은 모래는 밤이 되어도 열기를 놓아주지 않았다. 도시는 잠들어 있었지만, 사막의 열기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조선이었다. 이름은 `시와이즈 자이언트`. 길이는 잠실 운동장 네 개를 이어 놓은 것과 비슷했고, 이백만 배럴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거대한 배였다. 한때 그 배는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세계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던 철의 도시였다.
그러나 내가 본 배는 이미 죽어 있었다. 외판에는 총알구멍이 벌집처럼 뚫려 있었고, 선실은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기관실에는 바닷물이 차올라 있었고, 갑판 위에는 뒤틀린 철판이 괴물의 뼈처럼 널려 있었다.
구명보트 하나가 선체 중간에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텅 빈 채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 보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구명보트를 포기했을까.`총알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순간, 선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 그 바다가 그들에게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죽음이었을까.
그날 밤 그 배 위에서 밤을 보냈다. 낮에는 달걀을 익힐 만큼 뜨거웠던 철판이 밤이 되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몸을 숨길 곳은 기관실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앉아 체온을 나누었다. 작은 창문 너머로 별들이 보였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별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전쟁은 누구의 것일까. 대통령의 것일까. 장군의 것일까. 아니면 신문 기사 속에 등장하는 국가의 것일까.
그러나 내가 본 전쟁의 흔적은 다른 것이었다. 바다로 뛰어내린 선원들의 발자국,
검게 타버린 선실, 그리고 텅 빈 구명보트. 전쟁은 국가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죽음은 언제나 개인의 이름으로 끝난다.
새벽이 되자 멀리서 모스크의 아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바이의 거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흰 칸두라를 입은 사람들이 느긋하게 거리를 걸어 다녔다. 전쟁이 벌어졌던 바다와 불과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누군가는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같은 시간에 바다로 뛰어내린다.
나는 다시 텔레비전 화면 속 불타는 배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이 전쟁은 누구의 욕망인가. 아마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언제나 욕망으로 시작되지만, 역사는 결국 욕망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을 기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