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꾹꾹 눌러 쓴 듯
남아 있는 삶의 흔적들을
지우개로 쓱쓱 지운다
지워도 말끔해지지 않는
자국이 남아 슬퍼질 때마다
더욱 힘주어
문질러 보지만
때론 선명해지고
때론 겹쳐 흐릿해지기도 하고
어둠을 흔드는 빗소리
온 힘을 다하여 다잡아 봐도
가슴을 흔들며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바라보면 울컥
외로움은 점점 커져 가고
허겁지겁 달리고 달려 온 만큼
자꾸 미련이 남아요
자꾸 보고 싶고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되지요
기다리지 않아도
꽃은 피고
손 흔들지 않아도
꽃이 지네요
잊어야 할 것도
잊지 않으려 움켜잡고 있는 먹먹함도
더는 어쩔 수도 없는데
어둠을 밀며 꽃이 오네요
어둠에 기대며 꽃이 가네요
별들 다 떠난 하늘
바라보면 가슴 서늘해지고
바람 불면 눈을 감아요.
<시작노트>
산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꽃은 망각하지 않고 제 계절이 되면 다시 피어난다. 인간도 꽃처럼 졌다가 다시 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먹먹해지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서늘해진 가슴을 다독이면 살 뿐이다.
김종원
1960년 울산 출생. 1986년 시전문 무크지 《시인》지를 통하여 문단에 나왔다. <부산·경남 젊은시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울산작가회의> 수석부회장 및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흐르는 것은 아름답다』 『새벽,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다시 새벽이 오면』 『길 위에 누워 자는 길』 『분노의 꽃』 『ATM에서 통장정리하기』 『아득하게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2024, 시산맥사) 등과 시선집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별같이 살라하고』가 있다. 2016년에 울산광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2018, 2019, 2021년에는 <울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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