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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희망의 씨앗 한 알
 
강지혜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2/10/24 [19:17]
▲ 강지혜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동틀 녘,실눈 사이로 하얀 가운자락이 아른거리고 나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대학 응급실이었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 온 것이다. 식당을 운영 하던 나는 새벽에 가게 문을 나섰는데 그 뒤론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삼 년째 식당을 운영 하던 난 장사를 마치고 퇴근했는데 그 후로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운동하던 어떤 사람이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급히 119로 동탄 대학병원에 이송했다고 한다. 가장 위중한 환자만 있다는 순환기내과 13층에 입원하면서 고혈압이 진정이 되질 않아 혈관 확장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숨으로만 보내는데 수원으로 직업 훈련 학교를 다니던 큰아들이 매일 들려 머리도 감겨주고 간호를 도맡았다. 각종 검사에 병원비는 날로 쌓여가고 갑자기 바뀐 상황에 날마다 눈물로 지샜다. 무엇보다 생계를 잇던 식당 걱정이 앞섰다.

 

 "몸이 우선이지, 돈은 나중여" 앞에 계신 한 아주머니가 안스럽게 여기시며 아들하고 같이 먹으라며 안 먹은 반찬을 모아 챙겨 주셨고 다독다독 위로해 주셨다.

 

 6인실, 아주머니 병상은 창가 맨 가장자리였다. 창가엔 항상 책이 놓여 있었고 침상 머리맡에도 늘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물어 오셨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나는 걸어 다니는 소설 책여. 자서전을 쓰면 아마 시리즈로 한 열 권은 전집이 나올겨" 웃으시며 심장병을 앓기까지의 고충을 들려 주셨다.

 

 나는 아주머니와 눈만 맞추어도 교감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아주머니와 금세 가까워졌다. 정을 나누며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려 세울 수 있었다.

 

 그동안 수년간 장사 하느라 조금의 여유 시간도 갖지 못했었는데 어지러운 생각을 그저 책장에 묻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커튼을 치고 낮은 조명 아래 집히는대로 읽었다. 검사를 받고 틈틈이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 아들이 더 빨리 오는 것 같았다.

 

 그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지는데 의지와 큰 위안을 얻었다. 살아가면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불끈 삶의 용기도 생겨났다. 휴게실에서 그 아주머니와 나란히 휠체어에 앉아 차를 마시곤 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소리 없이 희망 안으로 이끌어 주셨다. 내가 가진 아픔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졌다. 혈압이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에 그 아주머니가 퇴원을 하신다고 하셨다.

 

 퇴원 하시는 날, 살며시 나를 부르시더니 다 읽은거라며 산문집 한 권을 건네셨다. 그리곤 저만큼 달아 나셨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래도 한사코 손을 저으며. 엉겹결에 받아들고 뭔가 이상한 예감에 펼쳐드니 책갈피에 아주머니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손글씨 쪽지와 봉투가 들어 있었다. "병 다 나아서 나가, 아들 보고 힘내!"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긴 그림자로 드리워진 복도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만 울컥해졌다. "저 집이 병원비 때문에 작은 병원으로 옮긴대요" 회진 때 의사 선생님께 계속 치료받아 다 나아서 나가게 해 달라고 나 대신 통사정을 하셨던 아주머니. 딸 같은 안스런 마음이 드셨을까.

 

 다행스럽게 보름만에 시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회복이 되었다. 보름치 병원비는 내게 너무나 버거웠지만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그 아주머니가 몰래 넣어 주신 돈을 보태 다행히 병원비를 내고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늘 엄마처럼 일일이 챙겨 주시고 의지를 다져주신 아주머니, 이런 이웃이 어디 또 있을까. "건강이 먼저여"

 

 아주머니의 말씀을 절감하고 퇴원 후 나는 식당을 폐업 했다. 2년이 흐른 지금은 약물 치료만 하며 인근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혹사시켜 얻은 병과 돈이 전부가 아니라며 엄마 품속처럼 따듯하게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워주신 그 아주머니가 순간 매우 그리워진다. 심장이 아팠던 아주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지, 아주머니도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계실 것이다. 내게 큰 위로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 아주머니. 딸처럼 손을 꼭 잡아주신 아주머니를 언젠가 꼭 뵐 수 있다면 내가 써놓은 손 편지를 꼭 전해 드리고 싶다.

 

 지긋이 눈감고 하나 둘 떠올려 본다. 그냥 흘려버린 바람, 눈길 주지 못한 꽃, 무심히 지나친 날들,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기억에 서린 모든 것들에 손 내밀어 악수하고 싶다.

 

 내게서 부서진 것들, 미처 안아주지 못한 것들과 `애 썼다, 예까지 오느라` 들려주며. 동여맸던 삶, 이제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고 싶다.

 

 마음마저 병들어가는 내게 환한 희망의 등불을 켜주신 아주머니가 언젠가 들려 주셨던 글귀가 떠오른다. `아프지 말아라, 네가 아프면 희망도 아프다. 네 희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러니 아프지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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