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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띠부 띠부 씰’이 뭐 길래
 
성진숙 울산 남구 무거초 교사   기사입력  2022/09/29 [19:27]
▲ 성진숙 울산 남구 무거초 교사     © 울산광역매일

 빨강이가 교실 앞 벤치 위에 놓아두고 깜빡 잊은 사이 `띠부띠부씰`이 든 스크랩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음 날, 슬픈 눈으로 스크랩북을 잃어버렸다 이야기하는 빨강이를 보며 `그러게 잘 관리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집 거실에 놓아두듯 아무렇게나 놓아둔 고가의 띠부 씰이 들어있는 스크랩북은 없는 마음도 생기게 한다. 학급에서 지도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도난사건이다. 사후 지도는 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돈이나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도를 안 할 수는 없다.

 

 고민 끝에 공동체서클을 열었다. 빨강이의 사라진 스크랩북을 공론화하고 빨강이의 속상함을 위로해주는 것으로 주제를 정했다. 고학년 교실의 도난사건 특성상 스크랩북을 찾기는 어려울것 같아 대신 상심한 빨강이에게 집중하려 마음먹었다.

 

 물건을 잃어버린 후 이틀이 지났다. 빨강이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서클 안에서 들려주었다. 빨강이가 띠부띠부씰을 구하기 위해 한여름 뙤약볕 아래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이야기, 스크랩북을 모으기 위해 6개월 넘게 공들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도 아이들도 빨강이의 스크랩북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강이에게 큰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빨강이는 허무하고 허탈하고 속상한 자신의 기분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빨강이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서클을 통해 대부분 `얼른 찾았으면 좋겠다`, `정말 속상하겠다`와 같은 바람과 공감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빨강이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는 주제로 서클을 운영할 때 반전이 생겼다. "집에 제가 모으는 띠부띠부씰과 겹치는 몇 개가 있는데 빨강이에게 줄게요" 파랑이의 말을 기점으로 몇몇 아이들이 같은 의견을 냈다. 모든 것을 잃은 빨강이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서클을 기획하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방안이다. 역시 답은 아이들에게 있구나.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해낸다.

 

 서클이 잘 끝나고 교실에 있을 확률이 높은, 빨강이의 띠부띠부씰을 가져갔을 아이에게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선생님도 어릴 적 도둑질 한 적이 있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작은 실수로 도둑질 한 이야기, 그로 인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는 이야기, 도둑질도 실수이니 되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너도나도 무언가를 의도치 않게 훔치거나 거짓말을 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너도 그런 적이 있었어?`라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고 그래서는 안 되는 행동이 그럴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는 실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곳은 교실이고 실수할 수 있는 곳이다. 실수를 바로잡고 실수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교실의 존재 이유이다. 이기기 어려운 유혹에 넘어가 빨강이의 물건에 손을 댄 그 아이의 마음에 조금쯤 균열이 생기기를 바랐다. 하지만 6학년 교실이고 물건이 없어진 후 이미 이틀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움직이더라도 `나의 잘못`이 드러나는 큰 리스크를 안고 물건을 빨강이에게 돌려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공동체서클이 무사히 끝났고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기적이 이때 일어났다. 쉬는 시간, 까망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 말했다. "선생님, 빨강이의 띠부띠부씰을 찾았어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까망이의 말로는 1층 분실물센터에 빨강이와 함께 가서 찾았다고 했다. 띠부띠부씰은 3분의2 정도 남아있었다. 

 

 기적이라 할 만하다. 서클을 통해 빨강이가 위로받고 친구들의 도움을 약속받은 그 순간이 첫 번째 기적이었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분실물 센터에서 띠부띠부씰을 찾게 만든 것이 두 번째 기적이었다. 서클이 아니면 이루어낼 수 없는 기적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선하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는 곳, 서클에 참여해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는 곳, 나의 실수가 실수로서 인정될 수 있는 곳, 스스로의 잘못을 직면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클이라는 것을 아이들과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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