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 닦은 거울에 날 비춰보았죠
어둠 속에 던져진 구근처럼 빛나던 머릿결은 색을 잃었군요 언제나 기다리겠다던 당신이 밤을 웅크리다가 꽃잎 떨구었으니까요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 창틀 화분마다 초록의 손가락, 날 부르는 손짓 가윗날 벌어지듯 점점 커지네요 푸석하던 마음에 물기가 돌았죠
어깨에 커트보를 두르고 첫봄이 되기로 했어요 가위질 소리, 얼어붙은 심장을 두드리네요 빗살이 머리칼 사이 지나갈 때마다 짧게 더 짧게 자르고 큐티클 녹여 크로커스 꽃을 피워 달라 했죠 죽었던 색, 한 방에 살아나도록 말예요 당신 손길 스치듯 미풍이 지나가고 낯선 나, 축배의 와인처럼 향기로워졌어요 여기는 흑백사진이 환해지는 곳 새치의 감정도 새순처럼 반짝이네요
오늘은 새로운 내 청춘의 첫봄, 당신 별자리 보이지 않아도 얼룩진 가운 벗고 랄랄라, 봄의 꽃말을 노래하겠어요
시작노트
어머니 몸 비우시고 몇 번의 달이 바뀌었는지, 복잡한 감정으로 칩거한 지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 이런 나에게 다시 봄을 선물처럼 주시려는지 자꾸만 머리가 근질거렸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창가에 크로커스 화분이 있는 미용실에 오게 되었다. 새롭게 첫봄이 되어보겠노라고 머리카락에 봄을 심어 보았다.
수원거주 2014년 『애지』로 등단 시집『밤의 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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