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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들락거리고 있다
 
최영랑 시인   기사입력  2021/01/21 [13:01]

 
욕조가 몸을 삼켰다
누군가 내 몸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알몸으로 걸어 나가는 이는 누구일까
그림자보다 다정하게
기억보다 명확하게
나를 나보다 먼저 증명하는 이 누구인가

 

바닥까지 침수된 나는 껍데기만 남았다
이대로 무덤이 되고 싶은데 물 밖에서 음악이 흐른다
사계 중 봄은 언제부터 명랑한 템포였나
물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리듬에
심장이 다시 반응하기 시작한다
말초신경이 꿈틀거리고 침묵이 표정을 바꾼다

 

한 자세로 나를 남겨 놓고 빠져나간 이가
다시 돌아와 나를 추궁한다
입구가 어디입니까 출구가 어디입니까
여전히 알 수 없는 질문들
몸을 일으켜 그를 뒤쫓는다

 

붉은빛에 에워싸인 나
한바탕 춤곡이 나를 붙잡고 흔든다
누군가 내 머릿속 마개를 뽑는다
물속의 퉁퉁 분 여자와
나를 버리고 빠져나간 여자와
여자를 보고 있던 여자가 모두 사라진다

 

아파트가 스티로폼처럼 가볍다

 


 

시작노트


 

▲ 최영랑 시인  © 울산광역매일

몸길을 따라 들락거린다. 소리와 풍경 그리고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웅크려 든다. 그것들은 운동성이 있어 수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보다 더 나 같아서 나를 잠시 잃어버리게 하는 것들, 내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이 나와 함께 밥을 먹고 걷고 일하고 같이 잠을 잔다.

 

내가 아닌 나로 계속 살아가는 일은 수용한계치를 경험하는 일. 몸의 현이 둔탁한 소리를 낸다. 허락도 없이 몸을 들락거리며, 거부할 수 없는 나른함으로 나를 무겁게 하는 존재들, 그것들을 툭툭 털어낸다 나의 시 쓰기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젖은 머리칼의 물방울들까지 해방 시키는 것이다



- 2015년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발코니 유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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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21 [13:01]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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