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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 대나무와 아이들
 
성진숙 북구 신천초 교사   기사입력  2020/10/28 [17:09]
▲ 성진숙 북구 신천초 교사    

며칠 전 방과 후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오늘은 선생님이 출장을 가서 교실을 열어둘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하고 급식지도 후 바쁘게 교실로 올라왔다. 그런데 책상 위를 보니 작은 과자와 노랑색 쪽지가 올려 져 있다. 쪽지를 펴보니 푸르미의 글씨다. `출장가면 배고플 선생님에게 이거 되게 맛있어요. 아무도 주지 말고 선생님 드세요. 제 기준에는 맛있었어요.`

 

정성스런 글씨로 쓴 쪽지를 예쁘게 접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눈물이 핑 돌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푸르미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감동을 준다. 올해 학급을 운영하면서 매일 생활기록장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한다. 생활기록장에는 그날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내가 느낀 소소한 행복, 감사일기, 내일 더 나아지고 싶은 부분 등을 적고 매일 교사와 답글로 소통을 한다.

 

처음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을 마주하고 걱정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에는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죽음에 관해서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춘기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걱정이 되어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근황과 고민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학급 단위로 장점 찾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 회복적 생활 서클도 운영하며 푸르미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기다렸지만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에는 번번이 부정적인 글들이 실렸다.

 

그날도 수업시간에 큰 한숨을 쉬며 참여하지 않고 엎드리는 푸르미를 보며 마음을 수양하듯 `이유가 있겠지` 생각을 가졌고 나아가 `푸름아 많이 피곤해보여. 어제 잠을 많이 못잤던거니?` 하고 물어봐주었다. 어제 잠을 설쳤다는 푸르미의 말을 듣고 다짜고짜 태도에 대한 지적부터 하지 않은 나에게 감사하며 수업을 마무리 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푸르미가 남긴 쪽지는 나에게 마음 한켠을 찡 하고 울리는 감동을 주었다. 불과 어제도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에는 `피곤하다. 피곤해서 그런지 학교가 재미없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은 푸르미가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구나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처음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에 자주 등장했던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삶에 대한 비판 등은 어느 순간부터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드라마틱한 푸르미의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며칠 전 읽었던 정목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라는 책에서 `우주의 시계에서 달팽이는 느려도 결코 늦지 않다` 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았는데 푸르미의 쪽지를 보는 순간 우주의 시계에 맞추어 자기만의 속도로 시나브로 변화하고 있는 푸르미의 모습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달팽이처럼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었구나...아무도 눈치재지 못하게 조금씩 변해 오늘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푸르미가 기특하고 예뻐보였다.

 

기다리면 변하는구나.. 정확하게 말하면 기다리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에 기름 붓기`라는 책에 중국의 모소대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의 극동지방에서만 자란다는 모소대나무는 4년이 지나도 3cm밖에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식물을 키우는데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화분에 자라는 화초 크기  만큼도 크지 못한다니.

 

하지만 이 대나무는 5년째 되는 날부터 하루에 무려 30cm 이상을 자란다고 한다. 그렇게 6주 만에 15m이상 자라게 되고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게 된다. 4년 동안 단 3cm의 성장을 했던 모소대나무는 5년 후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 6주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모소대나무는 사실 지난 4년 동안 땅 속에서 뿌리를 뻗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도 모소대나무와 같은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뿌리를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준비가 되면 푸르미처럼 한순간에 쑥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나와 생활하는 동안에는 뿌리만 내리다 성장의 시기를 다음 해로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변화가 없어 보이는 그 순간에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푸르미를 통해 다시 배우게 되었다. 내일 푸르미의 생활기록장을 마주하게 되면 열심히 뿌리내리고 있는 푸르미에게 응원과 격려의 답글을 달아주어야지 하는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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