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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 페인팅
 
박수현 시인   기사입력  2020/04/07 [16:48]


사막을 가로지르는 쌍봉낙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능선의 기하학적인 장정裝幀을 지운다 바람과 모래의 입술이 맞닿은 텍스트는 다시 백지다 한기가 엄습하는 밤, 육탈한 뼈만 남는 단호한 시간 전갈좌가 밤새 사막의 지붕에 도사리고 있다 무주지無主地의 모래톱에서 별빛들이 붐빈다

 

아침
모래 능선이 노파의 턱밑 주름처럼 호弧를 그린다 밤새 곱은 손을 비비던 사막은 아침햇살에 사프란빛으로 쾌활하다 능선의 늑골을 향해 검은개미를 먹고사는 도깨비도마뱀이 기어가고 새들은 색종이 조각처럼 공중을 난다 어린 유칼리 나뭇잎들이 쟁쟁거리는 순간 모래 소용돌이를 온몸이 밀고 가는 캐러밴들

 

정오
모래들이 흰 하늘로 스타카토식 고음의 노래를 바친다 너무 많은 태양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극사실주의, 팽팽한 스테인리스스틸 판처럼 은유도 없는 시선뿐이다 모래 속에 묻어둔 타조알을 찾아 와디를 헤매거나 소금에 절인 짐승의 살코기를 먹인 까마귀를 쫓아 물을 찾는 삼부루족 여인들 발목을 지운 자코메티의 후예들이다 

 

저녁
태양이 각도를 조금씩 눕히면 사막은 카엔후추빛 허밍을 낮게 부른다 낮이 다 타버린 자리에 노을은 낮과 밤을 가르는 도끼처럼 때론 에뮤 깃털 부츠를 신고 걸어온 발자국들을 빗질하며 찾아든다 저물녘, 낙타는 모래 속에 묻은 새끼의 울음소리로 사막을 건너고 차르르 모래 물결 따라 사막은 사라진 누란樓蘭의 방언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밤

 

지하철 구로역 출구에서 초록 버스를 갈아탄다 버스의 yap 광고 화면, 엄지손가락으로 그린 모래 꽃다발이 여인의 긴 머리채로, 중지와 검지는 박쥐우산을 받쳐 든 남자와 공원의 벤치를 불연속적으로 배치한다 눈 감으면 나는 모래보다 가벼워지고 까슬한 모래 알갱이들이 내 목젖을 타고 흘러내린다 사막의 사구에 쟁여진 만다라曼茶羅들 모호크족 머리장식 같은 볏을 세운 새들이 어떤 그늘을 물고 머리 위를 빙빙 돈다 내 몸에는 철 지난 포도알 같은 눈알들이 매달리지만 뒤도 앞도 보이지 않는다 느리게 숨 쉬는 검보라빛 카라부란黑暴風이 행간 속에 묻어둔 울음을 흩뿌린다 차창 밖으로 벌써 백만 번째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 박수현 시인    

태초에 사막은 바다였고 정글이었다. 티베트 여행에서 본 만다라들! 우주와 만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여러 겹 오방색 모래의 동심원과 사각들 문양과 색채는 화려하고 정교했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중심을 향하여 전진하다 유추에 의해 흩어지고 다시 결합한이것들은 완성되는 순간 흩어져 버린다. 위험하고도 아득한 모래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의 삶도, 이토록 목마른 시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저 가변적인 모래 그림과 무엇이 다를까. 하여 사막의 모래는 다시 그곳의 생명과 바람과 맞닿아 아름답고 슬픈 사막의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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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7 [16:48]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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