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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싸움 기질
 
이노형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기사입력  2020/01/21 [17:30]
▲ 이노형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며칠 뒤면 설이고 이어서는 대보름이다.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이 맘 때에도 우리는 갖가지로 민속놀이들을 즐겨왔다. 이런 놀이들이 예전에 견주어 많이 시들해진 것은 아무래도 관련 환경의 변화 탓일 것이다. 급속히 추진된 대규모 도시이농과 농촌공동체의 해체라고 하는 향유기반의 붕괴나 이질적인 외래문화의 범람 현상 등이 그것이다. 앞 시기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적 탄압을 받아야 했다.

 

이를테면 본래의 건강하던 민속놀이가 학교운동회나 상업무대 수준의 그것으로 축소 변질됨으로써 고유한 현장성을 박탈당한 채로 연명하거나 그들에게 위험해보이는 놀이들은 아예 금지됨으로써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줄다리기 같은 민속이 전자의 경우라면 돌팔패싸움, 편싸움, 편전(便戰), 석전(石戰,)으로도 불리는 돌싸움, 횃불싸움 등은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이 저들의 정치적 탄압 대상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연희자이자 관중인 수많은 군중이 주체적으로 전개하는 집단적 놀이였기 때문이다. 이 집단성은 경기의 승부를 다투는 치열성까지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열광했던 놀이가 이런 민속놀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놀이로서의 집단적 열광이 가혹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강점 상황의 주체들에게는 대규모의 저항적, 정치적 열광으로도 전환 분출될 가능성을 지닐 수 있다. 일제가 민속놀이를 탄압한 까닭은 바로 그런 정치적 지점에 놓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해방과 함께 줄다리기나 탈춤 같은 것은 더러 복원되었지만 한결 험한 놀이인 돌싸움 같은 민속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19세기 말 나라의 병력이 몇 천명도 못 되고 그마저 군인들 상당수는 생업을 겸했듯이 국방력이 거의 텅빈 때가 있었다. 강점당한 미증유의 비극이 증명하듯이 물질적이거나 군사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서 관념이나 문화, 그마저도 사대주의의 그것에 기댄 채로 나라의 자주성을 견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애국계몽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선 주력은 생활 현장의 민간인들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의 주체가 평민 주력의 의병과 농민군이었던 것이다.

 

의병 일부를 이룬 양반도 민간인들이다. 민간인들이 어떻게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 침략군에 맞설 수 있었을까. 양반의병의 의기야 통치집단으로서 수행해야할 명분 때문이라 하더라도 하층의 농민군이나 평민의병의 결사적인 애국애족 행위의 배경은 도대체 무엇일까. 애국애족정신의 높이만으로는 그 해명이 부족할듯 하다. 관련하여 그들이 즐겨온 돌싸움 같은 민속놀이를 돌이켜볼 수 있다. 굳센 담력이나 배짱, 씩씩한 기백, 동요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낙관주의 등의 정신적 지향을 그런 민속놀이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보다는 무를 지향하는 무력적 기질까지 읽을 수 있다. 돌싸움은 돌맹이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놀이가 아니던가. 이런 기질들은 모두 전투적 기질에 닿는 정신세계다. 그렇다면 그런 기질은 보통의 사람들이 악조건을 무릅쓴 채 피어린 항일의 전쟁터로 나아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딱하게도 그들 민간인들에게 가장 우수한 전투수단이라고는 그러한 정신 밖에 없지 않을까. 왜군에 견주어 우리는 정신 말고는 체력이나 훈련, 조직, 화력의 강도나 규모 등 객관적 조건에서 절대 열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질이 반드시 이런 민속놀이에서만 비롯되지는 않아서 유구한 역사의 포괄적인 생활 과정에서 비롯되고 단련되어온 결과일 수 있다. 어쨌든 민속놀이 차원의 이런 전투적 기질이 항일무투의 현장 차원에서는 다른 정신세계에 융합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그것으로 전환 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것이 반침략투쟁의 현장에서는 애국애족정신과 융합됨으로써 이제 놀이적, 일상적 기질로부터 정치적 차원의 그것으로 전환된 것이라 하겠다. 양 같이 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침략이나 불의에는 전투적 기질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인 셈이다. 돌싸움 같은 민속은 자주 기상이 강했던 고구려에는 국책 차원의 민속이기도 했고 신라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전국적으로 전승되면서 사람들이 가장 열광했던 집단적 민속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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