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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부검하다
 
임은주 시인   기사입력  2020/01/20 [16:43]

그는 차디찬 쇳덩이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못할 때의 무게는 더 큰 허공이다
돌발적인 사건을 끌고 온 아침의 얼굴이 쾡하다
피를 묻힌 장갑이 단서를 찾고 일순 열손가락이 긴장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망치와 드릴이 달려들어
서둘러 몸을 빠져나간 속도를 심문한다
평생 기름밥을 먹은 늙은 부검의와 주인 앞에 놓인 식은 몸을
날이 선 늦가을 바람과 졸음이 각을 뜨는 순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진흙탕과 좁은 논둑길이 나타난다
 
미궁을 건너온 사인(死因)에 집중한다
붉게 녹슨 등짝엔 논밭을 뒤집고 들판을 실어 나른
흔적이 보인다 심장충격기에도 반응이 없는 엔진
오랫동안 노동에 시달린 혹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탈, 탈, 탈, 더 털릴 들판도 없이 홀로 2만Km를 달려 온 바퀴엔
갈라진 뒤꿈치의 무늬가 찍혀있다
 
가만히 지나간 시간을 만지면
그 속에 갇힌 울음이 시커멓게 묻어나온다
소의 목에서 흘러나온 선지 같은 기름이 왈칵 쏟아진다

 

임종의 안쪽에는 어느새 검은 멍이 튼튼히 자리 잡았다
길이 간절할 때마다 울음이 작동되지 못하고 툴툴거린 흔적이다
죽어도 사흘 동안 귀는 열려 있다는 말을 꼭 움켜쥔
얼굴의 피멍이 희미한 눈빛부터 쓸어내렸다

 

이제 습골(拾骨)의 시간이다
정든 과수원 나무들이 마지막 악수를 청했는지 뼈마디마다 주저흔이 보인다고
기름 묻은 손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 임은주 시인  

오래된 기도는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 한 때를 기록했다. 모두 도시로 떠나기 위해 포도밭을 정리할 때 아버지는 그 뽑아서 내버린 포도나무 가지들을 다시 자신의 밭에 옮기시고 꺾꽂이로 포도원을 이루어 내셨다. 죽음직전의 생명까지도 다른 땅에 꺾꽂이로 몸소 보여주신 우리의 아버지 복원작업이 내 속에 흐르도록, 생영을 가꾸고 열매 맺는 노동이 내 나무뿌리에도 흐르기를 염원하여 그림 그리듯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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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0 [16:4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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