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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방송촬영 후기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20/01/20 [16:42]
▲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아주 뜨겁던 지난 7월의 여름날, 지역 번호 `02`로 시작하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전화의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광고 전화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는 첫 인사말이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정진희 선생님. 여기는 EBS `다큐멘터리` 팀인데요. 8월 촬영 섭외로 전화 드렸습니다."  전화의 핵심은 8월의 아무개 날을 정하여 2주에 걸쳐, 나의 수업과 학생들의 토론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짧은 순간 고민이 이어졌다.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방송에 얼굴을 내비친다는 쑥스러움이 가장 큰 고민이었으나, 이 고민을 말끔히 접어 준 것은 우리 반 학생들이었다. 지방에 사는 우리 반 28명의 학생이 언제 전국구 방송을 위한 과정을 직접 겪어보며, 언제 이런 멋진 경험을 직접 해 보겠냐는 것이다. 흔쾌히 `Yes`를 외치고 나니 방송을 위한 준비에 설레기 시작했다.

 

방송의 주제는 `청소년의 1인 방송`과 `스마트폰 사용`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교사라면 이에 대해 몇 시간이고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핀 마이크와, 커다란 카메라 여러 대, 방송에는 잡히지 않을 여러 스태프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술술 말할 수 있을까. 꽁꽁 얼어붙어서 평소 국어 시간에 하던 토론 모습의 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과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벌써 1차 촬영일이 다가왔다.


촬영을 위해 울산을 찾아오신 방송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촬영은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참모습을 걱정하던 내 고민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아이들의 능력에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청소년의 1인 방송`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아직 못한 말이 많다는 듯이 반전체 모든 아이가 자연스러운 토론을 이어갔다.

 

얼마나 열띤 토론이었는지, 나는 모처럼 사회자로서 양측 의견을 정리하기 바쁜 토론을 이어갔다. 학생들은 과반수가 `청소년의 1인 방송`과 `스마트폰 사용`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보였다.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조절만 잘한다면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나의 시대 변화로서 긍정적인 방향 안에서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면 된다.` 등이 학생 의견의 대부분이었다.

 

이에 반해 부정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어린 시기에 과도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절제가 잘 안 되는 시기이기에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 `학업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악성 댓글 등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등이 이를 반박하기에 바빴다. 평상시 토론 수업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토론 규칙에 맞춰 발언 기회를 얻었으며, 제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잘 표현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몇 명의 학생들은 학급을 대표하여 개인 인터뷰 촬영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살짝 가라앉을 때 즈음 방송촬영도 마무리가 되었다. 카메라가 모두 꺼지고, 촬영팀이 철수한 후에도 아이들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이런 촬영의 기회가 처음이어서 긴장을 했었는지 촬영 순간에 대한 에피소드로 웃음과 대화 소리가 끊이질 않은 것이다.

 

촬영을 위한 과정이 신경 쓰이면 어떠할까. 아이들이 이렇게 웃으면서 촬영에 참여하고 그 후기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또 한 뼘 성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에 촬영한 촬영본은 무려 새해를 맞이한 후의 겨울에서야 EBS 채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낯익은 얼굴들이 무척이나 반가운 겨울방학 중간이었다. 

 

`토론하는 너희 표정이 저렇게나 진지했구나` `너희의 생각을 들어달라고 이렇게 강하게 표현하는구나!` `너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이 저렇구나` 방송을 보는 내내 묘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유쾌함과 뿌듯함의 그 중간 어디인가 같았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스로 나온 방송분을 편집하여 SNS로 보내오는 아이, 방송에 나온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 우리가 전국구 방송에 나왔음을 신기해하는 아이, 28명의 감정이 하나하나 와 닿으면서 이 촬영을 하며 나 또한 조금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하는 경험,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발돋움할 수 있는 경험이자, 몇 년 후에도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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