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짐승처럼 길들여진다
하루의 절반은 너를 잡기 위해 나를 돌린다 돌리는 중이다 돌리다가 도로 잡힌다 이미 사로잡혀 있으면서 이미 잡고 있는 중이다 잡으면 잡을수록 더 사나워진다 덥썩 손목이 물린다 철철 피가 뿜어나도 그대로 둔다 야생의 이빨에게 다시 나를 미끼로 던져 둔다
하루의 절반은 바깥에 서 있다 너의 안으로 갇히기 위해
너는 더 이상 바깥이 아니다 죽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 야생이다 서슬푸른 칼날이며 문을 여는 손잡이다 문을 열면 열려야 할 바깥이 끊임없이 다시 쏟아져나오고 나는 언제나 바깥에 있는 중이다
바깥`은 `나`라는 존재를 확인해주는 타자이자, 나를 둘러싼 `세계`이다. 이 세계는 정형화 되거나 정지된 공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또는 되지 못한) 것들이 빠져나간 출구이자 내가 되기 위해 달려가는 입구이다. 즉 `바깥`은 끊임없이 현재의 `나`를 몰아내는 통로이자, 저 너머`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빨려 들어갈 통로이다. 이러한 논리는 "너의 안으로 갇히기 위해"(「바깥에서」) 존재하는 `나`와 같은 것이다. `바깥`은 "나를 미끼로 던져둔" 채 기다리는 야생의 세계이며, 끝없이 펼쳐지는 존재 확인의 공간 저 너머의 `나`이자, `타자(세계)`이기도 하다.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공간을 경계와 차이로서 바라보지 않고 공존하는 중첩의 세계로 바라본다. 들어서면 또다시 나타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나`인 셈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안으로 들어서지만 펼쳐지는 문 앞의 손잡이를 돌리며 또 다른 문밖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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