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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읽다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9/08/22 [16:23]
▲ 유서희 수필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여 습관적으로 사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가녀리게 휘어져 겹겹이 맞닿아 서로를 받쳐주는 풀잎이 좋고, 햇살과 달빛에 반짝이는 윤슬은 더욱 좋다. 성능이 좋은 휴대폰으로 바꾼 후 수동 카메라는 케이스 속에서 잠든 지 오래 되었다. 최신 휴대폰 덕분에 한동안 낮달과 밤하늘의 별을 찍는 재미에 빠졌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후, 나의 눈 속에는 언제나 나무가 담겨져 있다. 어린 나무는 가지가 가늘어 나무의 모습과 풍경이 조화를 이루어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멋이 있다. 가지 보다 잎이 풍성한 나무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해 주고, 산비탈에 위태롭게 자리 잡아 줄기를 올리는 나무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그 모습만으로도 위안이 되며 용기를 준다.

 

빗물이 아니고는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높은 바위의 정상에서 꼬당꼬당하게 자라는 키 작은 소나무를 볼 때면 세월의 깊이 앞에서 숙연해 진다. 어쩌다 뿌리째 뽑혀 누워있는 고목을 만나기라도 하면, 나이테의 둘레만한 세월을 묵묵히 견딘 시간을 풀어 놓고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 같아 쓸쓸해진다.


나무를 바라보는 매력은 전체 보다 부분에 있다. 줄기, 가지, 뿌리, 잎 그리고 나이테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겹겹으로 줄기를 에워싸고 갖가지 무늬로 새겨진 나무의 껍질. 그 부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의 숨결과 생을 느낄 수가 있다. 줄기의 꺾임과 나뭇잎들의 표정, 저마다 다른 가지의 굵기 등 하나하나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랫동안 보면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시처럼 오랫동안 자세히 보면 나무의 생김새와 색깔, 모양을 통해 나무를 읽을 수 있다.

 

고목의 휘어진 가지 위에 여린 새싹이 양팔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켠 모습을 보는 것은 환희롭다. 언뜻 보기에 생기 하나 없는 초주검을 앞 둔 나무처럼 보이지만 힘겹게 꽃망울 틔우는 그 경이로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도 덩달아 두 팔 벌려 한 아름 고목을 안으면 아버지의 품에서 잠결로 빠져드는 것같이 편안하다. 그 넓은 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의 자국이 스미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거칠어진 나무의 살갗엔 바람의 흔적 짙고 사람들이 무심코 휘두른 난도질에 아물지 못한 상처는 하늘의 위로에 눈물짓고 있다. 계절의 향기를 담아 꽃잎을 활짝 피운 자리마다 어머니의 젖내 같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고목은 그림자까지도 그 깊이를 더 한다. 고목을 읽으면서 이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그림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는 가지와 잎과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가 어떤 때는 더 생동감이 있어 보일 때도 있다. 실제 나무에서 보지 못한 가지의 모양이 그림자에는 또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햇볕이 없으면 생명을 가질 수 없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일 수 없는 것. 햇볕이 있는 순간에만 모습을 나타날 수 있는 그림자의 생. 요즘은 나무 보다는 나무의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목의 그림자는 더욱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잡는다. 나무의 생만큼 고목의 그림자는 온전히 그 세월을 모두 가진다. 뿌리까지 나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견뎠을까. 반짝 나타났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는 그림자. 나무와의 주어진 숙명의 시간을 견디며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한 순간을 견디는 일. 그것이 그림자가 나무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품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주보는 행복을 위해 인내하고 이해하며 기다려야 한다. 자세하고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 사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을 품는 다는 것.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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