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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시간
 
박서운 논설위원 울산과학대 교수   기사입력  2019/07/11 [19:09]
▲ 박서운 논설위원 울산과학대 교수    

포도주가 좋은 향기를 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포도가 가지고 있는 당, 산, 페놀류 등의 물질들은 복합적인 화학 작용을 통해 향이나 색과 질감 등이 변하는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다. 숙성여부에 따라 포도주의 품질이 결정된다. 보통 오크통 즉 참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오크통의 재료인 참나무에서 바닐라, 과일 향 등 다양한 맛과 향 그리고 탄닌이 배어들어 그런 맛을 낸다고 한다.

 

결국 숙성정도에 따라 한 병에 몇 천 원짜리부터 몇 천 만원까지 몸값이 매겨진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그런 고급 포도주는 은은한 향과 멋을 자랑할 것 같다. 그 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나지 않는, 서로가 서로를 다스리며 같이 향을 뽐내는 중용의 덕이 어우러진 맛으로 상상된다. 전 세계의 200여 나라는 저마다 품격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가 풍기는 멋스러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문화생활이 어우러진 향내는 결코 GNP나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적 지표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주 빈곤한 나라로 치부했던 나라에서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부러움을 자아내는 경우를 자주 보지 않는가.


성숙함이 뿌리내려 은은하고 멋스런 파스텔톤풍의 사회를 지향함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다. 성숙함은 시간의 산물이다. 성능 좋은 기계장치를 설치해서 스위치 한번 올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자신을 깎아내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상대방에게 보충 받아 메꾸어 나가 스스로 완전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성숙의 시간일 것이다. 마치 우리가 포도주를 병에 채우자마자 코르크 마개를 따버려 미성숙된 값싼 포도주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70년대부터 시작된 압축성장의 결과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다다랐으나 사회전체가 발달장애에 걸리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한껏 조롱하던 졸부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은 아닐까? 유럽은 천년 아니 이천년의 숙성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미국만 해도 1776년 독립 이래 240여년의 성숙기를 지나 세계의 일류국가로 변하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도 `조선`이라는 문화의 용트림시기를 가지고 있다. 은둔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바로 문화적 숙성의 시기이고, 이때 우리가 이루어낸 문화적 가치는 세계 어느 문화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일류급이다.

 

그러나 우리는 코르크 마개가 너무 꽉 막혀 향이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나 산패한 후에야 꺼낸 포도주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린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 간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주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수한 집단은 연습 시간이 1만 시간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에 집착하고 그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 한다. 어린 운동선수들에게는 먼저 체력과 기본기를 충실하게 가르치고 정교한 기술은 그 이후에 연마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일찍 완성형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너무 일찍 펴서 금방 시드는 꽃처럼 사라지는 유명 운동선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반대의 예로 손흥민 선수를 들 수 있다. 기본기연마라는 충실한 성숙기를 거친 그는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탈원전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섰다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72% 수준인 원전 의존율을 50%로 낮추는 계획을 당초 일정보다 10년이나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가 탈원전정책을 재조정하고 나선 것은 급격한 원전 비중 축소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여론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은 장기적 플랜으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고 성숙의 단계를 거쳐야 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들은 임기 내 공약사항 성취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잘못된 공약도 별로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마 선거에 내 건 공약이 주로 전 정권을 부정하고 규탄한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숙한 공약과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공약을 계속 이어가는 성숙한 정치풍토를 가꾸어 나갈지 걱정도 하고 기대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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