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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지어 (Dog`s ear)
 
홍경나 시인   기사입력  2019/06/18 [16:03]

접어둔 페이지를 펼쳐들었다
처음 보는 페이지처럼 펼쳐들었다

 

오래전 그때 페이지를 접었다
미련이 많아 뒤돌아보는 사람처럼
주머니 속에서 또 주먹을 쥔 사람처럼
또 나를 접었다
함부로 접힌 페이지

 

나는 그를 잊었다
벽 위의 정물화 같은
유월의 나비물 같은
페이지 대신 나를 잊었다

 

성큼성큼 들여놓은 가장 안쪽의 안
더 깊게 접은 한쪽 귀퉁이, 페이지의 귀

 

책을 펼쳐들 때마다
접힌 페이지가 나타났다
나는 겁 많은 짐승처럼
되돌아오기만 하는 내선 순환열차처럼
페이지를 다시 접고 책을 덮었다

 

다시는 네가 떠오르지 않을까 봐

 


 

 

▲ 홍경나 시인    

접는다는 것은 쉼표이다. 막 발견한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 어제 찾아냈던 풍경을 다시 찾기 위해서 잠시 쉬는 것이다. 오늘, 대답을 듣지 못한 네게 내일 새로이 또 물어보기 위해서다. 쉼표를 찍듯 접어두는 것. 그러므로 접는다는 것은 이어간다는 것이다. 볕뉘가 두 눈에 얹힐 때, 엉뚱한 공기가 맨살에 닿을 때, 가끔 미간으로 주름이 잡히고 더 가끔 등 뒤가 서늘하게 젖어올 때. 내가 만났던 풍경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시나브로 나를 떠난 너까지, 잊고 있던 것들에 송두리째 맘 뒤설레는 날이 있다. 삶은 계속된다. 모든 삶은 낡아간다. 거기 놓인 삶의 무게 또한 낡아간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우연히, 접은 페이지를 펴 읽게 된다면, 내가 접어 둔 풍경과 내가 접어 둔 사람들, 접힌 네가 오롯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삶의 페이지 페이지들이 오랫동안 그대로인 조잘대는 말투, 그때와 똑같은 궁금한 표정으로 나와 함께했음을 깨닫는다. 수없이 접어 간 페이지의 귀, 도그지어를 다시금 펼쳐본다면, 가끔은 삶이 생기를 찾고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오늘, 책장의 한 귀퉁이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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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8 [16:0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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