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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캐며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9/03/21 [18:21]
▲ 유서희 수필가    

주말에는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던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전화 했지." 미세 먼지로 봄다운 날을 만나기 힘든 요즘 모처럼 찾아 온 맑은 날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왔는데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햇살을 가득 업고 곳곳에 고개를 내민 봄의 전령사들과 눈을 맞추며 걷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휴대폰을 통해 전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봄 향기가 묻어났다. 벌써 쑥이 많이 자랐다는 그녀의 말을 듣자 문득 쑥을 캐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봄`하고 입안에서 되뇌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쑥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쑥을 캐는 일이다. 쑥국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햇살이 잘 드는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던 유년의 추억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동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쑥과 달래, 냉이를 캐는 것이 봄을 맞이하는 기쁨이었다.


반나절 가까이 들판을 옮겨 다니며 쑥을 캐다 보면 일찍이 뿌리를 잘린 채 소쿠리에 담겨진 쑥은 햇살에 절여져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시들은 쑥을 일으켜 세워 보지만 금방 내려 앉아 버리곤 했다. 생각하면 오랜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힘들 줄도 모르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그 때가 더없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로의 소쿠리를 대어 보며 자랑하던 추억이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와 함께 연둣빛 향기로 피어났다. 쑥을 캐면 어머니의 향기가 피어난다. 어머니와 함께 쑥을 캘 때 쑥 잎을 만지며 들려주시던 그 목소리가 바람결에 다시 들릴 것만 같다. `지푸라기 속에 덮여서 자란 쑥은 키는 크지만 영양가가 없고 이렇게 혹독한 겨울을 온 몸으로 견디느라 납작하게 땅에 붙어 통통한 줄기를 세운 쑥이 좋은기라` 겨울을 이겨낸 쑥을 기특함을 빌어 당신의 딸도 그렇게 세상을 굳건히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어머니의 기도가 목련 꽃봉오리로 피어나 봄을 환히 밝힌다.

 

어머니와 함께만들었던 쑥떡의 맛도 아지랑이처럼 아롱아롱 입 안에서 맴돈다. 들에서 캐 온 쑥을 삶아 불린 찹쌀과 함께 머리에 이고 떡 방앗간으로 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오수를 즐기는 꿈결처럼 아득하다. 떡 반죽을 이고 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동네 어귀에 닿으면 나는 얼른 마루에 기름종이를 깔아 놓는다. 그 위에 방금 갈아 온 콩가루 위에 펼치면 고소한 향내에 침이 샘솟아 올랐다.

 

기름종이 위에 태평양 바다처럼 널찍하게 펼쳐진 콩가루 위에 쑥 반죽을 부으면 용암처럼 서서히 옮겨가는 모양이 신기했다. 어머니는 반죽이 손에 달라붙지 않게 물을 묻혀 가며 진지한 표정으로 뜨거운 쑥 반죽을 얇게 펼치시는 모습이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것 같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쑥 반죽을 다 펼칠 후 콩가를 입힌 후 칼 대신 접시로 떡 가래를 끊었다. 예리한 칼날에 기름종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한 뜻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부드러운 타원형의 둥근 기운이 쑥떡을 먹는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지혜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소쿠리가 아닌 비닐봉지를 하나씩 손에 쥐고 집 근처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바람은 제법 쌀쌀하게 불고 있었다. 몇 해 전 동네 사람들과 쑥을 캐던 곳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되었지만 인적이 드물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아 다른 곳 보다는 깨끗한 쑥을 캘 수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쑥을 캐는 재미 중 제일은 수다를 떠는 일이다. 입과 손을 쉴 틈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쑥을 캘 수 있는 것은 여자만의 특별한 능력이 아닐까. 마음이 전해지는 좋은 사람과 주고받는 수다는 최고의 봄맛이다. 그녀와는 오랜 지기로서 자주 만났었지만 서로가 바쁘게 지내다보니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가뭄 속의 단비처럼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고팠던 수다를 왁자하게 늘어놓으니 우리를 지켜보던 진달래도 꽃잎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잠시 허리를 펴고 준비해 간 커피와 간식을 먹고 진달래와 눈을 맞추며 분홍빛 휴식을 가지는 동안에도 수다는 이어졌다. 맑은 하늘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꽃과 초록의 향연이 한창인 지상 최고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솔잎 속에 묻혀 삐죽이 올라 온 쑥에 손이 가다가 이내 몸을 돌린다. 그 옆을 보니 땅에 납작하게 붙은 채 통통한 줄기를 밀어올린 쑥을 잡으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진 비바람을 견딘 쑥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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