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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이경숙 시인   기사입력  2019/01/10 [17:34]

그가 곁을 내주었다
오른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우산을 받쳐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왼쪽 귓불이 화끈거렸고
그의 몸은 젖었다
우리의 몸은 포개져
연둣빛 옷고름을 풀고 말았다

 

집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나 있다
푸들 두 마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뛰어 간다
화살나무 등 뒤에서 서로의 얼굴을 섞는다

 

지나가던 노인,
지팡이를 땅땅 두드린다

 


 

 

▲ 이경숙 시인    

지금처럼 애완견이 흔하지 않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우리는 신혼살림을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서 시작했다. 마당이 한 가운데 있고 안채와 사랑채가 빙 둘러져 있는 집이었다. 마당 한 쪽에 수도가 있어 쌀을 씻고. 빨래를 하는 등 울 안에서 공동체로 생활하였다. 안 집 식구 모녀 외에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누니라는 개가 있었다. 눈보다도 더 흰 누니는 속눈섭이 짙고 길었다. 천성이 착해서 울안의 식구들을 잘 따랐다. 누니가 암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더 이상 사랑이나 연애를 허락할 수 없다고 대문을 꽁공 닫아걸었다. 이미 두 번이나 출산을 했기에 몸이 허약해졌다는 이유였다. 대문을 닫아걸고 문을 열어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장사를 나갔다. 그런데 동네 개들은 어찌 그렇게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는지, 온 동네 수캐란 수캐는 어디서 왔는지, 처음 보는 개들이 다 몰려와 대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꼼짝도 않고 있던 누니는 몸집이 큰 누런 개가 대문 앞에 나타나자 삐끔이 열린 문틈을 밀어제치고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개들의 세계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마음과 몸을 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옆집에서 키우는 푸들 두 마리가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하는 양이 예뻐서 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몇 십 년 전 바바리코틀 걸치고 나를 설레게 했던 남자가 서 있었다. 세월의 훈장을 얼굴에 잔뜩 그려 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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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10 [17:3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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