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지 않은 말 하나
불씨처럼 쥐고 서 있습니다
바닥에 엎질러진 말들 사이로
흘러내린 커피의 체온이 식고 있어요
나는 건조대에 널린 하루를 털어 말리고
바다가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 읽지 못한 메시지를 열어봅니다
비워 놓은 말풍선처럼
견디는 자의 하루에는 박수가 없습니다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을
수평선이 자르며 지나갑니다
유리컵에 남은 마지막 물기처럼
나는 흐리고 작아지다 사라집니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건
어쩌면 그 하루에 다 넣지 못한 말들 때문일지 몰라요
말은 불입니다
꺼내지 않으면 내 속을 태우고
함부로 꺼내면, 타인의 속을 태웁니다
그대를 태운 말의 씨앗이 무엇인지 몰라
뾰족해진 그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해안선을 돌 듯
그대의 마음 곁을 돌고 또 돕니다
꺼내 놓지 못해서
비어 있는 말풍선에 매달린 나의 하루가
젖은 구름이 되기도 하고 빗방울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노트>
새해가 되면 매년 다짐하는 것 중 하나가 `말조심`이다.
말은 불이라는 생각이 든다. "꺼내지 않으면 내 속을 태우고/ 함부로 꺼내면, 타인의 속을 태"운다. 간혹,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나의 말로 인해 상처받았다고 할 때가 있다. 또 반대로, 언어에 민감함 시인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기고 한다. 그럴 때마다 "유리컵에 남은 마지막 물기처럼 나는 흐리고 작아" 진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건/ 어쩌면 그 하루에 다 넣지 못한 말들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떻게 할 말 다 하고 살겠는가? 詩처럼 불필요한 말은 삭제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침묵이 금이라 하지 않는가?
말에 상처받은 사람이 내게 상담해 오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상처받지 마세요. 상대방은 당신에게 상처 입힌 줄도 모르고, 편하게 발 뻗고 자고 있을 거예요. 나만 속상해하고 상처받으면 손해잖아요.
" 말로 상처 입은 나와 당신에게 이 시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
ㆍ2016년 월간 <시와표현> 시, 신인상
ㆍ2019년 <강원일보>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ㆍ2023년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ㆍ2025년 월간 <모덤포엠> 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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