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스크린에 걸린 길을 달려갔다
옛 궁터는 본시 연지였던가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분다
웃으면 한껏 젖혀지는 고개를 따라
도미노가 되는 연잎 춤꾼들 속으로
꽃 깃을 스치며 걷는다
격렬하지 않아도 춤사위는 잎사귀
뒤집어 놓고 부끄러운 듯 보송한 뒤태를
보는 사람이 반하도록 흔든다
진흙 깊은 곳에 초석 다져 연결하고
한 장 꽃잎이 쉬이 시들지 않도록
솟은 기둥에 올려놓은 지붕 그 안
속에는 준공을 앞둔 집들에
어느새 초록 연자들이 입주해 있다
견고한 염원이 가득 담고
떨어진 씨앗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더라도
죽지 않는 꽃잠으로
연꽃으로 살게 할 희망의 꿈
만나러 갔다가 만나고 오는 사람을 위한.
<시작노트>
여행의 체험을 통해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대면하는 모습을 엿본다. 이 시는 옛 궁터로 여행을 다녀온 후 썼다. 그 여행을 "허공 스크린에 걸린 길"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본디 삶이란 여행이고, 여행이란 걸림이 없는 허공 스크린에 걸린 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웃으면 한껏 젖혀지는 고개를 따라"서 연잎들이 있는 옛 궁터에서 시인은 떨어진 씨앗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해본다. 염원을 품은 연꽃을 "준공을 앞둔 집들에/ 어느새 초록 연자들이 입주해 있다"라는 기발한 발견을, 연(蓮)을 통해서 하게 된다. 그 후 그 씨앗의 용도는 "만나러 갔다가 만나고 오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내면세계에 희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엿보고 싶었다.
이애리 시인 ㆍ1989년 월간 『에세이』 신인상으로 수필 부문
등단.
ㆍ1992년 샘터사 동화 당선.
ㆍ2023년 세계직지문협 단행본 여행수필집 수상.
ㆍ2024년 수필창작문학상 공모 `효동문학상` 수상.
ㆍ2025년 『문학고을』 신인상으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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