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고민하다 식당까지 걸어갔습니다. 연수를 친구와 함께 와서 다행입니다. 연수원에서는 아침과 점심 식사만 제공하고 저녁 식사는 개인별로 알아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혼자 왔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일정을 맞춰서 같이 연수받자고 전화해 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저녁 식사 뒤에 걷는 바닷가는 한가로웠습니다.
‘우리가 이런 여유를 부리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평일에 바닷가를 거닐면서 평화로움을 만끽해 보기는 처음이라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캐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쌍의 부부가 조개를 캐고 있었습니다. 호미로 몇 번 갯벌을 파면 작은 구멍이 보였습니다. 구멍에 소금을 조금 놓으면 맛조개가 쏘옥 올라왔습니다. 그걸 가볍게 잡아당겨 올리면 속절없이 잡혔습니다. 처음 봐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하나 둘, 점점 맛조개가 쌓여갔습니다. 잡는 사람 입장에선 재미있고 즐겁지만, 맛조개 입장에선 먹고 살려다 사람 손에 잡히는 것이니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니, 경기도에 살고 있으며 어제 이곳으로 여행 와서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유로운 부부가 부럽다고 친구하고 말하다가, 우리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며 쓴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거니는데, 스르르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점점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해갔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퇴직 예정자 연수를 와서 서해의 노을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우리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진 뒤에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둘째 날이면서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또 친구와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걸었습니다. 어제 왼쪽에선 맛조개였는데, 오늘 오른쪽에선 할머니들이 조개를 캐고 계셨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사신다고 했습니다. 호미질 할 때마다 보이는 조개가 무척 신기했습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하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수련원으로 연수 왔다고, 조만간 이곳에 함께 오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정이 문제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뒤에 재취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평일에는 하루도 연가를 받지 않으시고 토요일엔 밭에 가시고 일요일엔 쉬시는데, 어머니가 교회에 가시니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여행에 무관심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곳에 가고 싶다며, 장소를 콕 찍어서 말씀하신 곳이 여러 곳입니다. 그래서 여행 가자고 말씀드리면, 시간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책임감이 몸에 배어, 하루도 쉬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여러 곳이 아프십니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언제까지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퇴직 연수를 받으며 기분이 착잡해지는데,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계시는 어머니를 위하여 시간을 많이 내려고 계획 중입니다.
아버지하고도 지금보다는 자주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혹시 아버지께서 시간을 내지 않으시면 일단 어머니만 모시고 여행을 다닐 생각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처음에는 서운해하시다, 어느 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바쁘신 부모님께서 협조를 안 하시니 혼자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떻게든 좀 더 연구를 해서, 적극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할 방안을 강구 해야겠습니다.
며칠 전, 시아주버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갑자기 몸무게가 10kg이 빠지면서 혈당 수치가 너무 높아 병원에 입원하신 것입니다. 초췌한 얼굴로 미소를 띤 채,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데도 혈당이 내려가지 않는다며, 현재 여러 가지 검사 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암이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혼란스럽고 우울해하고 있던 차에, 머리가 ‘띵!’ 했습니다. ‘이 세상에 죽고 사는 것보다 더 큰일은 없는데 본인 앞에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 앞에서 이렇게 초연하게 말씀을 하시다니!’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중, 췌장암이라는 시아주버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건강하셔서 앞으로 10년은 더 사실지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눈물만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