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개인의 취향을 정교하게 학습하여 다음 행보를 선제적으로 결정해 주는 이른바 `제로 클릭`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기술적 진보가 가져온 비약적인 효율성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편리함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손가락 끝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세상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획득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선택의 설렘이나 기다림의 미학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으며, 화려한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시선을 점유당한 사이 정작 우리 곁에 찾아온 계절의 변화와 오감이 전하는 생생한 자극에 대해서는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정보의 과잉이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하고 기술의 진보가 인간 본연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채 알고리즘이 설계한 가상 영토를 의미 없이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임에도 불구하고 식탁 앞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 속에 있는 타인의 삶을 엿보는 풍경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되었고, 가장 가까운 사회적 기초 단위인 가족 공동체마저 디지털 기기의 광원에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디지털 피로와 관계의 단절이 심화되는 시기에 우리 곁을 찾아오는 `장미`는 단순한 시각적 유희의 대상을 넘어, 현대인이 잠시 `디지털 로그아웃`을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심리적 정거장이자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다정한 촉매제로서 기능한다.
울산대공원의 수백만 송이 장미가 일제히 뿜어내는 진한 향기와 미풍에 흔들리는 꽃잎의 떨림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아무리 정교하게 재현한다 한들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생명력의 실체이며, 장미 넝쿨 사이를 느릿하게 걷는 것은 디지털기기 속도에 맞춰진 우리의 일상을 비로소 `인간의 속도`로 되돌려 놓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미의 붉은 빛에 시선을 던지고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는 그 짧은 순간을 통해, 알고리즘의 지배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 감각을 느끼고 향유하는 주체로서의 삶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데,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감각적인 경험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가치 중심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비 가치로 부상한 `필코노미`적 소비가치가 말해주듯, 이제는 경제적 효율이나 수치 중심의 성과를 넘어 개인의 정서적 만족과 심리적 안녕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서 숨 가쁘게 달려왔던 우리 도시가, 이제는 시민들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소박한 행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진정한 삶의 여유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연결을 과감히 끊어내는 `비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알림음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곁에 있는 자녀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세월의 흐름만큼 깊어진 부모님의 주름을 마주하며 잊고 있었던 사랑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
우리 도시의 공간들이 건네는 진정한 위로는 거창한 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퇴근길이나 주말에 우연히 마주하는 아름다운 장미와 태화강변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가치들이다.
장미의 계절만큼은 스마트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오로지 나만의 감각과 사랑하는 이의 눈빛에 집중하며 5월의 공기를 만끽해 보길 권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가는 불안의 시대일수록 장미 향기에 취하고 사랑하는 이와 눈을 맞추는 `인간다운 여유`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이며, 이러한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장미의 향기와 따스한 시선이 교차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보통의 하루` 속에서 `특별한 행복`을 발견하는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