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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칼럼> 고고학과 발굴 이야기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기사입력  2024/06/24 [16:31]

▲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 울산광역매일

 지금은 고3 수험생과 학부모가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 선택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시점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시 원서 작성할 때를 생각해 보면 역사 관련 학과에 가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는데, 사학과를 갈지 고고학과를 갈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한 번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시제도가 시행될 때라 나름 신중했던 것 같다. 역사 중에서도 고대사 혹은 선사시대 쪽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고고학과에 진학했는데 사실 그 때는 고고학과나 사학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몰랐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고고학과 역사학은 과거 인간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연구의 소재가 구분된다. 역사학은 조상들이 남긴 문자 즉 책이나 비석 등이 연구의 소재가 된다. 반면 고고학은 조상들이 남긴 물건이나 흔적이 연구의 소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우리나라의 경우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연구는 고고학이 전담할 수밖에 없다. 역사시대도 조상들이 남긴 여러 유물이나 무덤 등의 자료가 문자기록 못지 않게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경주의 그 유명한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의 발굴 성과 없이 어떻게 신라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고고학이 역사학과 다른 이런 차이 때문에 전 세계 고고학자는 어렵고 힘들지만 재밌고 오묘한 발굴조사에 반드시 참여하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실습으로 가야왕의 공동묘지라는 그 유명한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조사에 실습생으로 참여하였고, 대학 졸업 이후 직업으로서만 30년째 발굴조사를 해오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5년간 산청, 함양, 사천. 진주, 밀양 등 경남지역 각지의 발굴조사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울산지역 조사에 몰두한 지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은 평생 필자의 직업이 된 발굴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발굴은 땅 속에 있는 조상의 흔적을 찾아 매몰 전 상태대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땅속에 있는 유적을 어떻게 찾았느냐는 점이다. 전공자라고 해서 땅속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하에 있는 유적을 찾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지표조사이다. 말 그대로 지표면을 조사하는 것으로 절대 땅을 굴착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걸어다니면서 지표면에 토기조각 같은 유물이 노출되어 있는지, 유적이 입지하기에 좋은 지형인지, 주변에 조사된 유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지표조사가 완료되어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정말로 땅속에 있는지 시굴조사를 실시한다. 땅 전체를 파는 게 아니라 전체의 10% 정도를 직접 파서 유적의 분포여부를 판단한다. 땅 전체를 모두 파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게 해서 땅 속에 유적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이제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한다. 땅속에서 수백 년,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한 도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이 직업을 가진 가장 큰 보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어도 다시 발굴현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발굴의 제1원칙은 발굴을 안 하는 것이다. 발굴조사 자체가 한편으로는 유적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조사가 실시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발굴조사 기술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 수백 년, 수천 년 후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더 나은 발굴조사 장비와 기술, 인력을 갖추어 좃하는 것이 우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흔적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유산 조사를 담당하는 국가유산청에서 발굴조사에 대한 허가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올 한 해에만 발굴조사 허가 건수가 700여 건에 이를 정도이다.(700여 건에는 유적의 분포 여부를 판단하는 시굴조사도 포함된다. 시굴조사도 땅을 파는 행위이기 때문에 발굴에 포함된다.) 발굴을 안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발굴조사는 유적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온전히 학문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술발굴조사와 철도, 도로, 건물이 들어서서 유적이 훼손되기 전에 실시하는 구제발굴조사로 나누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 구제발굴조사이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국토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토 전역 지하에 유적이 분포하는데, 유적을 보호하고자 꼭 필요한 도로, 철도, 병원, 학교를 건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지하에 있는 소중한 매장문화유산이 문화유산답게 대접받는 게 아니라 개발의 걸림돌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어 이 일에 종사하는 필자로서는 개탄스러울 때가 많다. 학교, 도로, 아파트가 건립되는 곳에 발굴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개발 주체가 교육청, 지자체, 민간으로 달랐다. 상식적으로 도로→학교→아파트 순으로 건립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아파트→학교→도로의 순으로 건설되어 아파트 입주가 끝난 후에 도로 건설 부지 아래에 있는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고고학 종사자가 민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데 지하에 있는 유적이 무슨 죄가 있고, 그걸 조사하는 고고학 종사자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문화유산을 깡그리 뭉개고 도로와 학교를 건립하자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사실 이런 일이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만 없다면 우리는 좋은 직업이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렇게 폭염과 한파에도 현장에 나가는 것은 우리가 조사를 마무리해야 이후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상기후라 그런지 요즘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좋은 조건에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번 조사가 이루어지면 훼손되는 유적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좀더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고고학 환경이 많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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