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은 목초지에서 돌아온다
빈방 가득 빛이 없는 연료들
이불 속에 가득 찬 실뭉치에
따듯한 말이 들어 있긴 할까
양 떼는 웅성거리는 밤에 자라서
등과 불룩한 배는 누구의 몸 치수를 재는지
길게 풀어져 나온 실뭉치들로
엉킨 저녁 페이지를 넘긴다
그때 서로의 얼굴에서 터진 솔기 같은 표정이 적힌다
바깥과 안쪽 모서리에 상처가 난다
저녁을 다 감기 전에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이고
풀밭에 떠도는 말을 양 떼가 몰고 다닌다
두 번 다시 감을 수 없는 서로에게 묶인 실타래
양 떼의 울음으로 실은 풀어지고 초식동물의 잠은 감긴다
입구를 흔들면 저녁이 짧아진 양 떼들이
우르르 몰려 나갈 출구를 찾는다
양의 털실로 밤의 모서리를 접는다
<시작노트>
"실을 키우는 몸통"이라는 구절에서 양은 즉각적으로 동물성과 식물성이 교차하는 이중 지대다. 만물이 소통하고 교차하던 먼 옛날의 신화시대처럼, 그로테스크하게도 양은 `실`을 키우는 나무이면서 그 실을 `털`로 치환하는 동물이다. `실`의 생산을 넘어서서, `실`에 내재하는 매개적 속성으로의 전환이다. 그는 양 떼를 가만히 지켜본다. 가끔 양들은 울음을 뱉어내며 온몸을 휘감는 실의 은근한 간지럼을 표현하고, 서로에게 밀착하여 비벼댐으로써 이 간지럼을 해소한다. 실이 잠시 힘을 잃는 때는, 양들이 잠드는 순간이다. 신경을 멈췄는지 실타래는 축 늘어지는 것이다.
박민서
· 전남 해남 출생.
·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 2019년 『시산맥』 등단.
· 제4회 시산맥 창작기금 수혜.
. 첫시집 『야간개장 동물원』(도서출판 달을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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