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운 논설위원 울산과학대 명예교수 © 울산광역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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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녘에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상쾌하다. 무언지 모를 기대감으로 가슴이 살짝 뛰기도 하고 유익한 일에 시간을 쓴다는 뿌듯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도서관 가는 것이 취미가 될 수는 없으나 마음속으로는 `이게 나의 최애 취미야` 하며 스스로 만족해 할 때도 많으니, 고상한 척하고 싶은 유년의 우쭐한 마음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듯하다.
요즘은 여기저기 도서관이 많아 그것이 내 서재라도 되는 양 편리하기가 그지없다. 일요일 아침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도서관에는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책과 더불어 무언가를 열심히들 하고 있다. 평온함과 차분함으로 채워진 공간이지만 학생들의 수능문제집과 누군가의 자격증 수험서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공간을 휘감고 있다. 신문을 들척이는 하얀 머리 노인들, 엄마 손에 이끌리어 온 아이들은 동영상 보관대를 떠나지 못하고 연신 엄마에게 `엄마, 이거! 이거!`하면서 조르고 있다. 중년의 사내 앞에는 두꺼운 수험서가 견고한 성벽처럼 놓여있고, 그는 이 성벽을 기어이 오르려 애쓰는 병사같이 보여 안쓰럽기까지 하다. 취미생활과 각박한 생활전선이 함께 어우러진 일요일 날, 도서관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대학 다닐 때 헌 교재를 사러 헌책방을 자주 다녔다. 처음에는 주뼛주뼛하며 "이런 이런 책 있어요?"하며 수줍게 물어보던 신입생이 나중에는 필요한 책 이름을 적은 메모지만 건네주며 책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종종 나곤 한다. 대학에 임용되어 연구실을 배정받았는데,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채워도 서가는 덩그러니 빈 공간이 많아 드나드는 학생들 보기에 민망했다. 그래서 헌 책 사는 신공을 또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쏘다니며 시외버스로 낑낑대며 가져왔던 기억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지금도 헌 책방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서 헌책이 내는 쾌쾌한 냄새 맡기를 좋아한다. 마치 고향집 밭에 뿌린 두엄냄새 같이 정겹기가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도서관의 보존서가실에 들어갈 일이 생기면 퀴퀴한 책 냄새의 향연 속에 빠지곤 한다.
전공이 공학 분야라 젊을 때에는 문학서적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전공책을 읽기에도 시간도 없어 쩔쩔맸을 뿐더러, 설령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의 사치`라는 생각으로 애써 외면하곤 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분의 연구실을 가보면 찬란한 인문학 서적들, 심지어 최근의 베스트셀러 소설책까지 서가에 떡하니 꽂혀 있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기억도 선연하다. 책을 살 때에도 한 두 번 보고 서가에 꽂혀있게 될 소설류 같은 책 사는 것을 꺼려했다. 책값이 아깝고, 도서관에서 빌려보아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책사는 기준은 사실 지금까지도 거의 변함이 없으니, 이제는 바꿔야 할 버릇이 아닌가도 싶다.
오후의 도서관 분위기는 오전과는 사뭇 다르다. 오전의 노고를 통하여 무언가를 해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편안함이 여기저기서 배어난다. 긴장감으로 딱딱했던 모습은 풀어지고 저마다 편한 자세로 책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전투적인 직선에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앞에 앉은 여고생은 길게 늘인 팔위에 머리를 옆으로 눕힌 채 잠깐의 오수에 빠져 있다. 얼굴을 받치고 있는 책은 노랑, 분홍, 바다색 형광펜으로 화려하게 단장하고 그 자태를 뽐내는 듯하다. 파스텔 톤 같은 편안함으로 한껏 늘어진 나른한 오후의 열람실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내아이가 "엄마! 가자"하며 큰 소리로 떼쓰고 조르는 바람에 모두들 몸을 추스르며 일으킨다. 그러나 모두 익숙하게 느끼는지 뒤돌아보는 사람도 없이 몸을 곧추세우고는 다시 책과의 씨름을 시작한다. 벽에 걸린 도서관의 시계도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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